길진균 정치부 차장
“온건개혁 노선을 표방하고 나선 ‘21세기 진보학생연합’ 후보 강병원 군(23)이 민중민주(PD) 계열 후보를 837표 차로 제치고 당선됐다.”
선거 결과를 알린 1993년 11월 28일자 동아일보 기사다. 서울대에서 처음으로 온건파 후보가 민족해방(NL)과 PD 진영 후보들을 누르고 당선됐기 때문이다. 승자였던 ‘강 군’은 지금 더불어민주당 재선 강병원 의원이다.
우리 정치에서 97세대(90년대에 대학을 다닌 70년대생)는 세대 담론에서 투명인간에 가까웠다. 21대 국회의원 300명 가운데 40대는 38명(12.7%)에 불과하다. 50대는 177명(59%)으로 전체의 절반을 넘는다. 86그룹에 비해 수적으로 열세일 뿐만 아니라 리더로 자리 잡은 인물도 찾기 힘들다. 특히 여권에서는 20년 넘게 주축으로 활동하고 있는 86그룹의 그늘에 가려 있고, 심지어 일부는 ‘똘마니’로 치부되고 있다.
그랬던 70년대생을 야권이 주목하기 시작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13일 취임 인사차 찾아온 김 대표의 “가르침을 달라”는 인사말에 즉석에서 노동법과 낙태죄 등 의제를 놓고 의견을 나누며 15분가량 공개 토론을 벌였다. 40년생인 김 위원장과 30년 나이 차를 건너뛴, 진보와 보수를 이끄는 두 야당 대표의 대화는 세간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국민의힘 안에서 차기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는 김웅, 윤희숙 의원도 70년생이고, 김 위원장은 ‘70년대생 경제통’을 차기 대선 후보로 꼽기도 했다. 시대 변화를 읽지 못해 외면받은 야당으로서 선제적 세대교체를 통해 당의 이미지를 바꿔야 한다는 절박감이 반영됐을 것이다.
다만 운동권으로 대표되는 86그룹과 달리 97세대 정치인들은 정치에 입문한 과정도, 계파도, 추구하는 가치도 제각각이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는 97세대가 주축인 X세대를 두고 ‘우리나라 최초의 개인주의 세대’라고 했다. 정치인도 다르지 않다. 20대 국회 민주당 70년대생 의원 모임 ‘응칠(응답하라 1970)’에 참여했던 박용진 강병원 김병관 박주민 김해영 의원 등은 의정활동에서 뚜렷한 개성을 보였지만 세를 만들진 못했다. 참여했던 한 의원은 “세대교체를 선언할 용기도, 하나로 묶을 가치도 없었다”고 했다. ‘머릿수 싸움’이라는 여의도 정치에서 뭉치기 어렵다는 것은 큰 약점이다. 그렇지만 86세대의 민주화와 2030의 개인주의를 동시에 공감한다는 점에서 97세대는 통합과 포용의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86그룹에 대한 피로감과 함께 정치권 세대교체는 시간문제일 뿐 필연이다. 21대 국회는 여야 70년대생 정치인들에게 구시대의 막내가 될지, 변화를 이끄는 새 시대의 첫차가 될지를 결정짓는 시험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