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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뻐터’ 바른 목소리가 ‘솔’로 재탄생한 것 같아요”

입력 | 2020-10-16 03:00:00

뮤지컬 ‘킹키부츠’서 드래그퀸 ‘롤라’역으로 관객 사로잡은 강홍석




뮤지컬 ‘킹키부츠’ 무대에 선 ‘롤라’ 강홍석(오른쪽)은 “발성법을 제대로 배우고 싶어 소리꾼 선생님들을 따라다녔다. 무대에 올랐을 때 ‘강홍석은 정말 꾼이다’란 말을 평생 듣고 싶다”고 했다. CJ ENM 제공

《“솔 충만한 ‘흑인 언니’가 나타났다!” 뮤지컬 ‘킹키부츠’의 강홍석(34·사진)은 ‘무대에서 참 잘 논다’는 말이 어울린다. 걸걸하면서 섹시한 목소리, 꿈틀대는 춤, 넘치는 흥, 압도적 성량…. 관객들은 “무대 천재” “솔(soul)이 미쳤다” “무대를 뒤집어 놓으셨다”는 찬사를 보내며 그의 에너지를 고스란히 흡수한다.》

2014년 킹키부츠 초연부터 그는 드래그퀸 ‘롤라’였다. 이 역으로 그해 뮤지컬어워즈 남우주연상을 거머쥐며 롤라는 ‘인생 캐릭터’가 됐다. 2016년 재연, 올해 3연을 거치며 더욱 능구렁이가 된 그를 13일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에서 만났다. 강홍석은 “10년 전 모두가 제 ‘뻐터(버터)’ 바른 목소리는 한국 감성과 절대 맞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킹키부츠에서 뻐터가 솔로 재탄생한 것 같다”고 했다.

이 작품은 동명 영화를 각색해 2013년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하며 토니상 6개 부문을 석권한 쇼 뮤지컬이다. 영국 구두공장을 물려받은 찰리와 빨간 힐의 킹키부츠 탄생에 영감을 불어넣은 롤라의 인생 역전을 그렸다. 진부하고 ‘착한’ 줄거리지만 배우들의 능청스러운 연기가 자칫 억지스러울 수 있는 전개를 말끔히 지웠다.

그의 뻐터는 감칠맛을 극대화했다. 어려서부터 흠뻑 취한 흑인음악 감성이 롤라를 만나 터져 나왔다. 그는 “마이클 잭슨, 윌 스미스, 제이미 폭스 등의 팝, 솔, 힙합을 매일 들으며 자랐다. (내가) 한국에 잘못 태어난 게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다”며 웃었다. 흥이 오르면 자신도 모르게 솔 넘치는 추임새, 애드리브가 나온다. “무조건 ‘강(强) 강 강 강’으로 지르던 발성을 ‘강 약 중강 약’으로 바꾸며 완급 조절에도 신경 쓰지요.” 183cm, 90kg의 거구이기에 관객 눈에는 ‘진짜 흑인 언니’로 보일 법도 하다. 롤라를 위해 20번 이상 태닝숍에 다니며 피부를 바싹 구워냈다.

물 만난 듯 뛰놀지만 사실 롤라는 배우에게 꽤 위험한 배역이다. 굽 높이 15cm의 부츠를 신고 춤추며, 빠르게 움직이는 컨베이어벨트 위에서 뛰놀아야 한다. 그는 “체중과 근육을 불려 무대에 섰는데 힐을 신으니 발목과 무릎이 몸무게를 견디지 못하더라. 근육을 많이 줄여야 했다”며 아쉬워했다.

따르는 위험만큼 관객에게는 치명적이다. 뻔뻔하고 억척스럽다가도 처연하다. 남성과 여성 사이에서 여러 자아를 끄집어내며 객석을 홀린다. 강홍석은 “초연 때 서울 청담동에서 오가는 여성들을 관찰하며 몸짓, 걸음걸이, 행동도 연구했다. 지금은 캐릭터의 리듬, 힘, 카리스마에 집중해 인간의 아름다움 자체를 강조한다”고 했다.

그는 일반 고교를 다니다 “노래 배우는 학교도 있다”는 말에 홀려 무턱대고 계원예고에 편입했다. 서울예대 연극과에 진학해 가수 준비도 했지만 2008년 영화 ‘영화는 영화다’로 데뷔했다. 뮤지컬 ‘하이스쿨 뮤지컬’ ‘데스노트’ ‘시티 오브 엔젤’에서 연기력으로 호평을 받았고 드라마 ‘더 킹’ ‘쌉니다 천리마마트’에서도 활약했다. 최근 후배들에게서 “꽃미남이 아닌데 어떻게 성공했느냐”는 질문을 받고 “잘하는 걸 찾아 미친 듯 한길만 파면 된다”고 답했다.

매력적인 롤라는 그의 노력이 가득 담긴, 어쩌면 그에게 필연적인 캐릭터다. “요즘 마스크 쓴 관객들이 소리도 못 지르고 손만 흔드는 모습을 보면 울컥한다. 롤라로 진짜 힐링 받는 건 관객이 아니라 나 자신이다.” 11월 1일까지. 서울 블루스퀘어, 8세 관람가.

김기윤 기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