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미국 수도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에 참석한 서욱 국방장관(왼쪽)과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
‘피아스코(fiasco)’
오랜만에 듣는 단어라 영한사전을 다시 찾아봐야 했습니다. 한미 관계에 매우 정통한 한 외교 전문가가 지난 주 한미안보협의회의(SCM) 결과를 지켜보면서 대뜸 내뱉은 한마디였습니다. 외교적으로 대실패, 혹은 참사라는 뜻으로 번역되는 이 단어가 한미 양국 간의 가장 중요한 동맹 협의체를 평가하는 데 쓰이다니요.
이런 결과를 놓고도 왜 우리 군 당국이 미국 정부에 쓴소리를 한 정황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비판도 항의도 나오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공동기자회견은 미국 내부사정 때문”이라고 사실상 대신 해명해 주거나 “서로 솔직한 대화를 나눴다”며 날 선 견해차를 애써 무마하려는 시도가 전부였습니다. 군 현안에 정통한 한 전문가는 “이번 SCM 결과는 한국에 대해 쌓여온 미국의 불만이 폭발한 것”이라며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한국이 미국에 큰소리칠 입장이 못 된다”고 혀를 찼습니다. 아무리 피로 맺어진 70년의 동맹이라도 주고받는 게 있어야 하는 것인데, 한국이 이번에 해준 게 너무 없다는 지적입니다.
경북 성주의 사드(THAAD) 미사일 기지 상황이 대표적입니다. 기지 설립에 반대하는 지역 주민들의 도로 봉쇄와 시위로 정상적인 기지 운영은 3년이 넘도록 정상화되지 못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차량 진입이 불가능해 헬기로 생필품을 실어 나르는 것은 둘째 치고 오폐수 차량조차 제대로 들어가지 못했다고 합니다. 주한미군 측이 여러 차례 항의했지만 실제 개선된 것은 거의 없다는 군요. 주한미군 측에서는 한국 정부가 주민들의 반대를 앞세워 미온적으로 대처하고 있다는 인식이 강하다고 합니다. 한 관계자는 “오수도 치우지 못하게 하는 나라에 자기 군대를 주둔시키고 싶겠느냐”며 “성주기지 상황만 놓고 보면 동맹이라고 하기도 민망하다”고 말했습니다.
사격 훈련장 폐쇄와 주민들의 소음 민원 때문에 주한미군이 제대로 훈련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한 불만도 최근 높아지고 있습니다.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은 7월 공개행사에서 주한미군이 한반도 밖으로 원정훈련을 나가야 상황을 거론하며 이 문제에 대해 작심발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이 동맹으로서 당당하게 뭔가를 요구하려면 그에 맞게 우리가 해줄 것은 확실히 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안 그래도 미중 갈등 속에 놓인 한국의 미묘한 지정학적 입지 때문에 외교, 경제, 기술 분야에서 한미 관계가 계속 삐걱대고 있는 게 아닐지요. 단단히 버텨줘야 할 동맹의 최후 보루, 군사 분야에서까지 양국 관계가 흔들린다면 지금 같은 동맹관계가 앞으로 70년 유지된다고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정부는 국내 정치나 여론에 휘둘리지 않고 대외적으로 더 큰 그림을 그려가며 외교안보 전략을 추진해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국익과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는 진정한 리더십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요.
이정은 워싱턴 특파원(북한학 석사)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