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튜브 캡처화면
최근 세계적으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는 한국인이 늘어나면서 외신 보도나 외국인 유튜브 영상에 기반해 한국을 찬양하는 ‘국뽕’ 콘텐츠들이 쏟아지고 있다. ‘국뽕’은 ‘국가’와 마약 ‘히로뽕(필로폰)’을 합친 단어로 국가에 대한 자부심에 과도하게 표출하는 것을 뜻하는 은어다. 일례로 유튜브에서 ‘해외 반응’이란 단어만 검색해 봐도 얼마나 다양한 ‘국뽕’ 콘텐츠들이 제작, 소비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최근에는 유명세를 탄 한국인과 관련한 콘텐츠를 의도적으로 제작해 수익을 내는 ‘국뽕 코인’이라는 단어도 등장했다.
하지만 성과는 축하하되, 지나친 자문화 중심주의와 과도한 애국심을 경계해야 한다는 움직임도 거세지고 있다. “국뽕도 과하면 치사량”이라며 객관적으로 사안을 바라보자는 ‘반(反) 국뽕’ 콘텐츠들도 점차 등장하고 있다.
최근 불거진 논란은 유튜브 ‘가짜사나이1’에 출연했던 게임방송 스트리머 가브리엘의 저격 발언이다. 크로아티아 출신인 그는 “한국어 할 줄 아는 외국인이 무슨 콘텐츠하면 제일 잘 나가는지 우린 다 알고 있다. 국뽕”이라며 “한국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한국 엔터테인먼트를 안 좋아한다. 검열이 심하다”고 비판했다.

유튜브 채널 ‘소련여자’ 캡처화면
국내 유튜버들 사이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구독자 29만 명의 채널 ‘리섭TV’는 “자긍심을 고취시키는 건 좋으나, 왜곡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객관성을 잃게 만들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악영향”이라고 비판했다. 가짜뉴스, 허위, 과장이 뒤섞인 ‘극혐 국뽕 모음’ ‘국뽕 시리즈’ 등을 비판하는 콘텐츠도 최근 자주 등장하고 있다. ‘충격적’ ‘기적적’ ‘깜짝 놀랄’ 같은 수식어가 붙은 영상은 거르고 보라는 팁도 공유되고 있다.
외국인 출연자가 등장하는 방송 프로그램에 대한 국뽕 지적도 끊임없이 제기돼 온 문제다. MBC 에브리원이 방영 중인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를 비롯해 JTBC ‘비정상회담’, 올리브 채널 ‘국경 없는 포차’, tvN ‘현지에서 먹힐까’과 ‘스페인 하숙’ 등이 비판을 받아왔다. 외국인들의 과한 칭찬이 계속 나오는 구성에 대해 “긍정적 반응만 나오는 점이 자연스럽지 않고 거북하다”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최근 한국에서 10년 가까이 살았던 영국 출신 저널리스트는 “방송사들이 특정 어젠다만 고수하기 때문에 외국인 출연자들은 한국 현실과는 거리가 먼, 그저 재롱을 피우는 동물처럼 행동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국뽕’ 현상의 이유를 열등감으로 봤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달라진 한국의 위상을 서구인들의 눈을 통해 확인받고 싶어 하는 심리가 깔려 있다. 과도한 자학도 문제지만 터무니없는 자만심에 빠져 ‘우리가 최고다’만 반복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명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식민지 경험으로 인해 민족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대리만족을 느끼고 싶어하는 경향이 짙다. 국뽕 문화는 자격지심의 발로이자 경제 발전에 따른 우월감이 묘하게 결합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