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후보자로 지명된 뒤인 2018년 11월 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사회 내부에 축적되는 예측 가능성을 높이겠다”고 말했다. 동아일보DB
황형준 정치부 기자
기획재정부 출입기자였던 2011년 9월, 당시 기재부 대변인이던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는 근대 이후 분단, 전쟁, 경제 발전, 민주화 등을 거친 그야말로 ‘다이내믹 코리아’지만 정작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행복지수가 낮다면서 나온 말이다. 한 치 앞도 예측하기 어려운 불확실성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의미였다.
그는 당시 새롭게 개편된 보행자 신호등을 언급하면서 “파란불에서 빨간불로 바뀔 때 숫자로 남은 시간을 알려주니 예측 가능성이 높아진다”며 “정부와 정책, 전 사회의 투명성을 높여 예측이 가능하게 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영국 유학과 미국 워싱턴에서 파견 근무를 했던 홍 부총리는 미국 고속도로 번호에 담긴 규칙 등을 예시로 들며 선진국처럼 정책은 물론이고 일상에서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게 신념이라고도 했다.
정부가 다주택자를 겨냥한 고강도 과세 방안과 대출 규제 등 대책을 릴레이식으로 쏟아낼 당시부터 시장에선 정부의 인위적인 대책이 부작용을 낳을 것이라는 우려를 내놨다. 하지만 정부가 서울 등 수도권 집값 안정이라는 단기 목표에만 치중해 주택 공급 없이 거래를 위축시키는 정책을 밀어붙이면서 오히려 주택 매매에 대한 불안심리를 부추겼고 집값 폭등으로 이어졌다. 수차례 부동산 관련 정책을 내놓았지만 정책의 불확실성만 극대화했을 뿐 아직까지 집값이 안정됐다고 평가하긴 힘든 상황이다. 정부 정책에 타격받은 화난 수요자들은 전세난에 부딪힌 홍 부총리에 대해 연민과 함께 “고소하다”는 반응을 내놓는 게 현실이다.
이번 정부 들어 우리 사회의 예측 가능성이 떨어진 것은 부동산 문제만이 아니다. 다주택자 배제라는 청와대의 고위 공직자 선출 방침은 능력보다 주택 보유 현황을 먼저 따져야 하는 기이한 인사 기준을 만들었다. 자고 일어나면 바뀌는 입시제도 탓에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발을 동동 구른다. 김상곤 전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수능은 익숙한 나쁜 제도”라며 수능 폐지 방침을 밝히더니 3년 새 수능 성적만으로 뽑는 정시의 비중을 40%까지 확대하겠다고 한다. 당장이라도 통일이 될 것처럼 남북 정상이 만나더니 최근엔 해양수산부 소속 어업지도원 이모 씨를 북한군이 사살한 뒤 불태우는 사건이 벌어지며 국민을 불안하게 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사과를 하고 “사랑하는 남녘 동포”라고 애정을 표현하자 정부의 표현은 ‘만행’에서 ‘우리 국민 사망 사건’으로 바뀌었다. 요지경 세상에 국민들만 헛갈린다.
최소한 예측 가능성을 금과옥조로 삼던 홍 부총리만이라도 경제 문제만큼은 국민들의 스트레스를 낮춰주고 안정감을 줘야 하지 않을까. 홍 부총리는 2018년 11월 부총리 후보자로 지명을 받은 뒤 “예측 가능성을 높이면 효율이 높아지고 시행착오 비용을 줄일 수 있다”며 “6개월가량 미리 경제팀이 언제 어떤 대책을 내놓을지 밝혀 정부가 하는 일, 정책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겠다”고 강조했다. 홍 부총리가 초심을 지키길 바란다.
황형준 정치부 기자 constant2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