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 ‘공평함’ 주장하는 아이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세상에는 완벽히 공평한 것은 없다. 어떤 한 아이가 잘못을 했다고 치자. 그 반 아이들이 그 아이 때문에 모두 다 같이 벌을 받았다. 이런 상황이라면 조금 억울한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여기서 내가 화를 내면 벌이 더 길어지겠지. 다른 아이들도 나처럼 짜증날 텐데, 화가 나도 좀 참아야지’라는 생각으로 대부분의 아이가 참는다. 그런데 참지 못하고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왜 나까지 벌을 받아야 해요?”라고 따지면, 교사는 더 화가 나서 십중팔구 벌은 더 길어지게 된다. 이런 행동은 자기 입장에서는 옳은 것을 주장한 것일지는 모르나 다른 사람한테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무조건 공평함’만 주장하는 아이들이 있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렸을 때 편애가 심했거나, 부모의 양육지침이 지나치게 일관성이 없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 어렸을 때 차별이나 억울함을 많이 느낀 아이일수록 공평을 강력하게 주장하지 않으면 자신이 피해나 손해를 본다고 생각한다. 사고의 유연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이 아이들은 항상 자로 잰 듯 ‘똑같이’를 주장한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그 규칙에서 벗어나 있는 남의 입장을 고려할 필요도, 자신이 남의 입장을 배려해서 조금 양보할 일도 없어진다. 동생과 빵을 나눠 먹어야 하는 상황에서 동생이 배가 더 고프면 내 것을 좀 더 나눠줄 수도 있는 법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공평함을 주장하는 아이는 어떠한 상황이라도 내 것이 줄어들면 속상하다. 이런 아이들은 모든 상황에서 공평함이 가장 먼저 보이기 때문에 학교생활에서의 스트레스도 심한 편이다.
이럴 때 부모는 그 상황과 관련된 여러 사람의 입장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단체로 벌을 받아 억울해하는 아이라면 이렇게 얘기해 준다. “단체 기합은 정말 효과적이지 않아. 왜냐하면 그 문제를 일으킨 아이를 너희들이 미워하게 될 수도 있거든. 선생님이 옳지는 않은 거야. 아마 선생님은 그 아이가 미안해서라도 더 잘할 거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어. 또 너희들이 같은 반이니까 동료의식을 느끼라고 그런 면도 있을 거야.” 그런데 이렇게 말해주면 대부분 ‘공평’이 지나치게 중요한 아이는 “아니요. 그냥 화가 나셔서 그러셨을걸요”라고 대답하곤 한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는 말도 해준다. 그리고 아이한테 “보통 이럴 때 다른 아이들은 어떻게 행동하니?”라고 묻는다. 아이가 “뭐, 씩씩거리기는 하지만 다 받고 가죠”라고 대답할 수 있다. 그러면 “그런데 너는 유난히 따지고 받아들이지 못하는데 네가 틀린 것은 아니야. 하지만 그렇게 큰 소리로 항의하고 기분 나빠하면 너희를 벌받게 한 그 아이 말고, 너처럼 아무 잘못 없는 다른 아이들이 불편해지잖아. 그럴 때는 나중에 조용히 선생님을 찾아가 ‘이것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아요’라고 얘기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라고 말해준다.
지나치게 억울해하고 공평함에 집착하는 아이는 타인의 입장을 고려하게 하는 연습을 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속상했겠구나. 기분이 굉장히 나빴겠다.” 이 정도로 아이의 감정을 공감해주고 “혹시 이런 면이 있지 않았을까?”라고 말을 시작해 다른 편의 입장을 설명해주도록 한다. “세상이 얼마나 불공평한 줄 아냐? 그러니까 공부 열심히 해서 출세하라는 거야.” 이런 식으로 말해서는 안 된다. 물론 세상은 공평하지 않고 억울한 면도 많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공평하지 않은 것 자체가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이해해주기 위한 세상의 이치일 수도 있다. 그런 배려와 이해로 결국 세상이 따뜻하게 굴러가는 것이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