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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탈원전 경제성 조작한 ‘코드행정’, 그래도 결론 피한 감사위원

입력 | 2020-10-21 00:00:00


감사원은 어제 월성 원자력발전소 1호기 조기 폐쇄의 결정적 근거가 된 경제성 평가가 불합리하게 낮게 평가됐다는 취지의 감사보고서를 발표했다. 문재인 정부 탈원전 정책 기조에 맞추기 위해 산업통상자원부가 경제성을 의도적으로 낮췄다는 것이다. 월성1호기 조기 폐쇄의 결정적 열쇠였던 경제성 평가 절차의 하자가 확인된 만큼 탈원전 정책을 둘러싼 논란은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감사보고서는 산자부와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월성1호기 계속 가동 시 전기 판매 수익을 고의로 낮추고, 가동 중단 시 인건비 등 비용 감소 효과를 늘리는 방식으로 경제성 평가를 조작했다고 밝혔다. 감사원은 이 과정에서 백운규 전 산자부 장관이 적극 개입했다며 백 전 장관의 비위행위를 인사혁신처에 통보했고, 정재훈 한수원 사장에게는 엄중 주의 조치했다.

7000억 원을 들여 설계수명을 2022년 11월까지 늘려놓은 월성1호기가 2018년 6월에 서둘러 폐쇄되자 졸속 결정 아니냐는 논란이 불거졌다. 국회의 의뢰로 지난해 10월부터 시작된 이번 감사는 탈원전 정책 역풍을 우려한 정부·여당의 반발에 부닥쳐 법정 감사 기간(5개월)을 넘기는 등 13개월이나 걸렸다.

그러나 감사원은 월성1호기 조기 폐쇄의 타당성 여부에 대해선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감사 내용은 감사원장을 포함한 7명의 감사위원 회의(현재 1명 공석)에서 과반 동의로 최종 의결된다. 현재 감사위원에는 문재인 대선 캠프나 현 정부 총리실 출신 등 친여 성향 인사들이 있다. 헌법이 보장하는 독립기관인 감사원의 감사위원은 정부정책 평가에 미치는 영향력을 감안하면 대법관과 같은 권위와 중립성이 요망된다. 정파적 입장을 떠나 정책결정의 적절성 여부만 따져야 한다. 그런데 감사위원들이 경제성 평가의 하자를 확인하고서도 조기 폐쇄 결정의 타당성 여부에 대해선 결론을 회피한 어정쩡한 결과를 냈다는 것은 비판을 면키 어렵다. 감사원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퇴행적 행태다.

이번 감사에서 드러난 산자부 관계자들의 감사 방해 행태는 기가 막힌다. 증거 인멸을 모의한 산자부 직원들은 일요일 밤에 사무실에 들어가서 컴퓨터에 저장된 수백 개의 파일 자료를 삭제했다고 한다. 감사원에 일부 자료를 제출하면서 청와대 보고 문건은 아예 빼버린 사실도 확인됐다. 위계질서가 뚜렷한 공직사회의 특성을 감안할 때 이런 감사 저항을 실무자급의 단독 행위로 보기는 어렵다. 후과를 책임지겠다는 윗선의 보증 없이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앞으로 검찰 수사를 통해 이 같은 외압 의혹도 파헤쳐야 한다. 필요하다면 국회 차원에서도 진상 규명에 나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