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알아서 할 테니 한 번만 믿고 따라와 줘.”
지난해 5월 서울 성동경찰서 강력2팀.
서주완 경위는 뭔가 단단히 결심한 듯 팀원들에게 다짐을 받았다. 당시 강력2팀은 한 보이스피싱 범죄조직의 현금 수거를 담당하는 조직원을 막 검거한 참이었다. 하지만 중국에 거점을 두고 조직원만 수백 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진 이 조직에서 현금수거책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었다. 서 경위는 이 조직을 끝까지 추적해 일망타진하길 원했다.
강력반 생활만 22년 차인 서 경위지만 해당 보이스피싱 조직을 쫓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단 어렵게 붙잡은 현금수거책의 계좌를 역으로 추적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밤을 지새가며 이체 내역을 일일이 대조했고, 이를 분석해 사건의 윤곽을 잡아나갔다.
현금수거책의 계좌를 추적한 지 6개월째. 지난해 11월 드디어 조직의 윤곽이 조금씩 드러났다. 중국에 있는 한 조직원이 범행수익금을 이체 받은 것으로 보이는 계좌를 찾아낸 것. 결국 해당 계좌 소유자인 조직원 A 씨가 중국 비자를 갱신하려 국내에 들어오는 걸 파악해 현장에서 붙잡았다.
하지만 해당 조직원은 호락호락하지가 않았다. 체포됐을 때를 대비한건지 앵무새 같은 변명만 반복했다. 서 경위는 일단 피의자의 마음을 얻는 게 중요하다고 여겼다. 일단 A 씨가 구속 수감된 구치소로 계속해서 찾아가 설득했다. 서 경위는 “지속적으로 양심에 호소하면 언젠가 자백할 거라고 믿었다”며 “5차례 계속 가서 진심 어린 조언을 했더니 조금씩 마음을 열었다”고 전했다.
서 경위에 감화된 A 씨는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A 씨는 이후에 “정신 차리게 해주셔서 고맙다”는 편지를 서 경위에게 보내기도 했단다. 제시한 여러 장의 사진들에서 자신과 함께 일했던 동료들을 하나하나 지목했다. 경찰은 해당 조직원들을 추적해 한국에 입국할 때마다 하나둘씩 붙잡았다. 이미 조직의 실체를 낱낱이 파악한 서 경위의 심문에 조직원들은 꼼작도 하질 못했다.
성동경찰서 강력2반 서주완 경위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하지만 서 경위는 “아직도 부족하다”고 한다. 보이스피싱 조직의 핵심 범죄자들도 여럿 검거했지만, 아직 피해자들이 제대로 돈을 돌려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경찰에 따르면 중국에도 여전히 남은 조직원이 많고, 국내에 왔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탓에 출국길이 막혀 숨어있는 조직원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 경위는 이들의 가족들에게도 찾아가 양심에 호소하며 설득 중이다. 몇몇 가족들은 중국에 있는 조직원에게 “자수하라”고 연락해주기도 했다.
성동경찰서 강력2반 서주완 경위와 동료 경찰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보이스피싱 조직 추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서 경위와 동료들은 해외로 도피한 피의자들에 대해서는 인터폴에 적색수배를 요청하고 국제공조수사를 통해 검거해나갈 예정이다. 서 경위는 “수사는 ‘인내’와 ‘끈기’의 싸움”이라며 “마지막 한 명을 검거할 때까지 절대 멈추지 않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