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촌 고시원 거리 전전하는 증발자 취약한 사회안전망이 초래한 재앙 기초생활보장도 이들에겐 먼 얘기 안전망 현대화해 사회복귀 도와야
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이 증발자 다수는 취약계층으로 살아간다. 여건이 되면 쪽방촌이나 고시원 생활을 한다. 사정이 어려워지면 거리 생활을 하기도 하고, 노숙인 쉼터와 같은 지원시설을 왕래하며 생활한다. 이른바 ‘노숙의 회전문’ 같은 삶을 살아가는 이들은 과거의 인연을 모두 끊고 또 다른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10여 년 전 노숙인들을 인터뷰하던 때가 기억난다. 저마다의 사연이 구구절절했다. 어린 시절의 학대 경험, 가출, 가정폭력, 정신병력과 같은 흔치 않은 고통을 겪은 이들도 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의 삶에서 빈번히 등장하는 것은 강제사직, 사업실패, 신용불량, 이런 낱말들이다. 별 탈 없이 살던 누구라도 어느 순간 닥칠 수 있는 그런 위험들이다. 단지 이들에게 특이한 면이 있다면 가난으로 가족 관계가 단절되고 최소한의 거주 공간마저 잃는 극단적인 지경의 경제적 궁핍을 거쳤다는 점이다. 실직과 빈곤으로 거처를 유지하기 어렵게 된 이들도 있고, 사업실패로 시작된 신용불량자의 삶으로부터 도피한 이들도 있었다. 가난 앞에 장사 없다고 극심한 생활고에 가족 간 불화도 잦아지면서 마지막 설 자리까지 잃게 된 사람들이었다.
우리 사회에서 익명의 증발자들이 존재를 본격적으로 드러낸 것은 1997, 1998년 외환위기 때로 기억한다. 경제위기의 여파로 많은 기업이 도산하고 실업자가 넘쳐나면서 서울역 앞에는 수천 명의 노숙인이 등장했다. 멀쩡하게 직장을 다니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생계 방편을 잃고 가족과 인연마저 끊으면서 거리로 나앉았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아마르티아 센은 장기간 고속성장을 이룬 한국 같은 나라가 한 번의 위기에 무너지는 모습 속에서 취약한 사회안전망이 불러온 재앙을 보았다.
과거 역사의 한 시대에는 증발자들이 부랑인의 모습으로 존재했다. 서구에서는 봉건적 지배 질서가 와해되는 과정에서 생존의 터전을 잃고 부랑 생활을 하는 농민이 대거 등장했다. 18∼19세기 절대주의 체제에서 이들은 극심한 단속과 처벌의 대상이 되었다. 생존의 대가로 구빈원이라는 시설에 구금되어 강제노동을 감당해야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20여 년 전까지 구빈원과 별다르지 않은 부랑인 수용시설이 있었다. 1980년대 후반 세상에 알려진 형제복지원 사건은 당시 시설에서 벌어진 부랑인에 대한 참혹한 인권유린을 보여주었다.
부랑인 시설은 과거의 얘기로 끝난 게 아니다. 많은 시설이 구태를 벗었지만 시설 수용의 전통은 여전히 우리 정부가 취약계층을 ‘보호’하는 한 방편으로 남아 있다. 지금도 노숙인 요양·재활시설에 수용된 인원이 수천 명에 달한다. 과거에는 억압적 정부가 강권으로 잡아 가두는 방식이었다면, 이제는 세상에서 살 길을 잃은 이들이 제 발로 찾아가는 점이 다를 뿐이다. 안정된 주거공간은 세상과 연결되는 출발점이지만, 이들에게는 다가가기 어려운 호사처럼 보인다. 정부가 내세우는 기초보장의 혜택도 주민등록이 말소되고 주소지도 사라진 이들에게는 멀기만 하다. 이렇듯 우리 사회의 안전망은 실패자의 재기를 돕는 버팀대이기보다는 실패자를 배제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서구 복지국가는 주거공간부터 지원하며 이들이 세상으로 복귀하는 것을 돕는다. 우리도 이들이 살 거처를 지원하여 이웃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제 수용시설 위주의 구습을 벗어나 사회안전망을 현대화해야 한다. 세상에서 증발되는 이웃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 포용과 연대의 세상을 만들어 나가자.
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