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안정 당위만 믿다가 무주택 처지
“정부 말 들으면 손해만 본다”는 통설 깨야

김광현 논설위원
이 친구의 무주택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중 가장 큰 것이 청와대나 경제부처가 하는 말을 너무 믿었다는 점이다. 노무현 정부 당시 집값이 한창 들썩일 때였다. 불안해진 친구 아내가 재건축 아파트 입주권이라도 사야겠다고 부동산중개업소에 다녀왔다. 그랬더니 친구가 “공무원이 아파트 딱지나 사서야 되겠느냐. 어차피 집값은 반드시 잡는다고 하니 그때 사도 늦지 않다”면서 면박을 줬다고 한 걸 들은 적이 있다. 지금은 집 이야기만 나오면 아내 얼굴도 쳐다보지 못하는 처지가 됐다.
여기에 당시 꽤 이름을 날리던 한 민간경제연구소의 논리도 한몫했다. 국민소득, 성장률, 인구구조 등을 종합해서 보면 서울의 집값이 턱없이 높은 수준이라는 것이다. 일본에서 부동산 버블이 터지듯 오래지 않아 서울 집값도 폭락한다는 거품붕괴론을 열심히 전파했다. 친구 A도 그 거품붕괴론을 들먹이면서 반드시 집값이 내려갈 것이라고 강조하곤 했다. 당위를 현실로 믿고 싶었던 것이다. 고장 난 시계도 하루에 두 번은 정확히 맞는다고 하는데 20년 넘은 최근에도 미친 집값론은 반복되고 있으니 그 말 듣고 집 안 산 사람들은 미칠 노릇일 게다.
앞으로는 나아질까. 전세 품귀와 전셋값 인상과 가장 관련이 많은 변수 중 하나가 신규 아파트 입주 물량이다. 전국 아파트 입주 물량을 보면 7월 4만1154가구에서 점점 줄어 이달에 2만1987가구로 감소한다. 내년에는 총 26만5594가구로 올해보다 26.5% 더 줄어든다. 서울만 보면 2만6940가구로 올해 4만8758가구에 비해 거의 반 토막 수준으로 급감한다. 주택임대차 3법 개정에 따른 일시적 혼란은 몇 개월 지나면 안정될 것이라는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의 말을 선뜻 믿기 어려운 이유다.
어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주재로 홍 부총리, 김 장관 등이 참석한 경제상황 점검회의가 열렸다. 언제부턴가 청와대, 국회에서 경제 관련 회의가 열린다면 또 무슨 해괴망측한 주장과 대책들이 나올까 싶어 겁부터 난다. 정부가 하는 말만 믿고 따라하기만 하면 노후에 손해 보는 일이 없다는 믿음을 주려면 무엇보다 정치적 목적이 아닌 현실적인 기반에서 출발한 대책을 내놔야 한다.
김광현 논설위원 kk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