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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네처럼 흔들리는 표심…‘美대선 좌지우지’ 경합주는 어떻게 탄생했나

입력 | 2020-10-23 20:19:00


대선 때마다 지지 정당이 바뀌어 대선 승패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경합주는 그네처럼 표심이 흔들린다는 의미에서 ‘스윙 스테이트’(swing state)로 불린다. 1936년 뉴욕타임스(NYT)가 처음 사용한 후 고유명사처럼 굳어졌다. 공화당의 상징 색인 빨강과 민주당의 상징 색인 파랑을 혼합하면 보라색이 되듯 양당 중 어느 한곳의 우세를 쉽게 특정할 수 없다는 뜻에서 ‘퍼플 스테이트’(purple state)라고 부르는 이도 있다.

전통 경합주 6곳은 중서부 쇠락한 공업지역인 ‘러스트벨트’와 공화당 텃밭인 남부 ‘선벨트’로 나뉜다. 펜실베이니아, 미시간, 위스콘신 주는 러스트벨트에, 플로리다, 노스캐롤라이나, 애리조나 주는 남부벨트에 속한다. 미국 웹사이트 히스토리에 따르면 미국 50개 주 가운데 28개주는 2000년부터 2016년까지 같은 정당에 투표했다. 나머지 12개 주 가운데 선거인단 수가 많고 표심이 팽팽히 맞서는 지역이 경합주로 분류된다.

●경합주 탄생 계기는 인종갈등
경합주의 탄생 배경에 대해선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2015년 ‘대선 경합주: 왜 10개주만 중요한가’를 출간한 미 정치학자 데이비드 슐츠 해믈린대 교수는 19세기 남북전쟁을 경합주 탄생의 시초로 평가했다.

당시 중공업이 발달한 북부는 노예해방 정책을 내세운 에이브러햄 링컨 공화당 대선후보를 지지했다. 반면 면화 등 노동집약적 산업이 위주였던 남부는 흑인 노동력이 필요했기에 반(反)링컨을 이유로 민주당에 몰표를 던졌다. 이 때 지리적으로 북부와 남부의 중간에 위치한 오하이오가 양측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주가 됐고, 실제 선거 때마다 공화당과 민주당 지지를 오가면서 현재의 경합주로 굳어졌다는 설명이다.

1960년대 흑인 인권을 보장하는 민권법이 속속 제정된 것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흑인을 포함한 유색인종이 투표를 통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몇몇 주의 정치 구도에 큰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사우스캐롤라이나는 원래 공화당 지지 성향이 강했지만 인구의 27%가 흑인인 상황이 됐다. 흑인 유권자의 몰표에 따라 민주당 후보가 승리할 토양이 갖춰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양당 모두 쉽사리 이 곳에서의 승리를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또한 경합주는 여러 인종과 산업이 혼재한다는 공통점도 있다. 미국에서는 ‘인종’과 ‘경제(일자리)’가 표심을 가르는데, 이 두 측면에서 다른 상황에 처한 세력들이 팽팽한 균형을 이룬다는 설명이다. 서정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경합주의 대부분은 백인과 유색인종, 농경지대와 공업지역이 백중세를 이룬다. 이 중 어떤 세력의 투표율이 높고, 어느 집단이 더 뭉치느냐에 따라 선거 결과가 매번 달라진다”고 진단했다.

●인구이동·이념 양극화도 경합주 증가에 기여
정보기술(IT)과 교통 발달로 인구 이동 및 이민이 활발해지고 양당의 이념 스펙트럼이 넓어지는 상황도 경합주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 제임스 김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10년 마다 실시하는 인구 분포에 따라 선거인단 수와 하원의원 수가 바뀌고, 이에 따라 경합주도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전통적으로 뉴욕, 로스앤젤레스 같은 동서부 해안 대도시는 민주당, 중부와 남부의 소도시는 공화당 지지세가 강했다. 하지만 2008년 세계 금융위기 후 대도시 집값과 생활비를 감당할 수 없었던 민주당 지지자가 물가가 싸고 기후가 온화한 남부로 이동해 공화당 표를 잠식하면서 과거 경합주가 아니었던 곳을 경합주로 만들고 있다.

중남미에서 온 이민자 역시 비슷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1972년 대선을 제외하고 현재까지 모든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가 이겼던 서부 애리조나에는 라틴계 인구가 급증하면서 민주당 지지세가 강해지고 있다. 미 상무부에 따르면 1990년대 약 69만 명이었던 애리조나 내 히스패닉은 2000년 약 130만 명으로 배 가까이 급증했다.

민주당과 공화당 각각 내부에서의 ‘이념차’가 커지는 것도 경합주를 늘리는 한 원인으로 꼽힌다. 실제 민주당 내 진보파와 중도파, 공화당 내 극우파와 온건파는 한 집단에 묶이기 어려울 정도로 추구하는 방향이 다르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하원의원 등이 이끄는 민주당 내 강경진보 세력은 ‘민주적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며 부유세, 탄소배출 ‘제로’(0) 등을 주창해 민주당 주류와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다.

마찬가지로 트럼프 대통령, 복음주의 개신교도, 티파티(Tea party) 같은 강경보수파는 백인 감소와 히스패닉 증가라는 미 유권자 구성 변화, 동성결혼과 성소수자 인권 확대 등 사회 변화를 반영하기 위해서라도 진보 색채를 일부분 차용할 수밖에 없다는 공화당 주류와 거리를 두고 있다.

양당의 이념 극단에 있는 세력이 더 선명한 강경 노선을 추구할수록 당내 주류와의 불화가 커진다. 이는 종종 상대 정당보다 당내 반대 세력을 더 적대시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2016년 대선에서 민주당 진보세력은 대선후보 당내 경선에서 샌더스 상원의원이 당 주류의 몰표를 받은 클린턴 후보에게 억울하게 패했다며 클린턴 후보를 적극 지지하지 않았다.

●경합주의 이익이 국익보다 우선시되기도
몇몇 경합주 표심이 사실상 미 대선 결과를 좌지우지 하는 현상이 최근 선거에서 이어지면서 민주주의가 훼손되고 있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게다가 특정한 경합주의 이익과 미국 사회 전체의 이익이 충돌할 때 권력자들이 정권 유지를 위해 국가보다 일부 주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경향을 드러내는 것도 문제로 꼽힌다. 미국이 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우수한 인재를 모아 오늘날의 세계 최강대국이 됐음에도 트럼프 행정부가 자신들의 탄생에 큰 기여를 한 러스트벨트 표심을 의식해 보호무역, 반이민 기치를 고수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아예 직선제를 도입하자는 주장까지 내놓고 있다. 18~19세기에는 교통 및 통신 발달 미비로 광대한 미국에서 전체 유권자를 대상으로 한 선거가 불가능했지만 정보기술(IT)이 급격하게 발달한 지금은 이런 장벽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신아형기자 abro@donga.com
이설 기자 sno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