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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사전투표 열기[횡설수설/김영식]

입력 | 2020-10-24 03:00:00


열흘 앞으로 다가온 미국 대선 투표일이 자칫하다간 ‘투표주(週·week)’로 바뀔지도 모른다. 우편투표와 조기 현장투표 등 사전투표가 전체 투표의 절반을 넘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나오는 얘기다. 급증한 우편투표의 봉투를 열고 유효 투표 여부를 확인한 뒤 개표기에 넣기 위해 투표용지를 일일이 펼치는 준비 작업으로만 날 새우다가 개표가 지연될 수 있다는 것이다.

▷22일 현재 약 4931만 명이 사전투표를 마쳤다. 이는 4년 전 대선 같은 시점 대비 8배가량 늘어난 것이다. 대선 당일 투표소에서의 코로나19 감염 우려가 가장 큰 이유겠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유권자들이 일찌감치 판단을 마친 데 따른 현상일 수도 있다. 사전투표 참여자 가운데 민주당원이 공화당원의 두 배에 이르고, 여성과 흑인 유권자의 참여 비율이 특히 높다고 한다.

▷부재자투표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건 남북전쟁 때인 1864년 대선이다. 에이브러햄 링컨 당시 대통령과 조지 매클렐런 민주당 후보의 대결을 앞두고 13개 주는 군인 부재자투표 제도를 도입했고, 인디애나 등 4개 주는 대리투표를 허용했다. 당시 해당 주 안에서만 투표를 허용한 일리노이 주법 때문에 백악관에 머물다 투표를 못했던 링컨 대통령은 고향을 떠난 병사들만큼은 투표할 권리를 누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쟁이나 질병 등으로 투표장에 나올 수 없던 유권자를 대상으로 했던 부재자투표가 우편투표와 조기투표로 진화한 것이다.

▷이번 대선은 코로나19 여파로 투표 절차 간소화 바람까지 불었다. 부재자가 아니어도 우편투표가 가능한 곳이 지난번 대선의 31개 주에서 42개 주로 늘었다. 뉴햄프셔 등 많은 주들이 올해 처음 모든 유권자를 대상으로 우편투표를 허용했다. 트럼프는 “우편투표는 사기”라며 자신이 패배한 것으로 나오면 승복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는 특정 후보나 정당의 자원봉사자 또는 직원이 유권자를 대신해 우편투표를 대신 발송하는 ‘투표용지 수거’ 시스템을 겨냥한다. 경합주인 펜실베이니아에선 선거일 사흘 뒤에 도착한 우편투표도 유효표로 인정하지만 정부의 공식 봉투만 사용해야 하는 등 주마다 다른 선거법으로 혼란이 더 커질 수 있다. 최대 10만 표가 사표(死票)가 될 수 있다는데, 양측 진영의 대결이 불 보듯 뻔하다.

▷선거인단 확보가 과반이 될 무렵 패자가 승복해온 것은 미 대선의 전통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우편투표 부정을 핑계로 선거 결과에 불복하고 소송전으로 간다는 시나리오까지 나왔다. 민주주의를 더 잘 이행하기 위해 만든 사전투표 제도마저 대결의 도구로 변질되는 모습이 안타까울 뿐이다.


김영식 논설위원 spe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