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2020년 3월 하와이에서 극초음속 미사일을 시험 발사하고 있다. [미 국방성 제공]
10월 21일 미국 동부 메인(Maine)주 포츠머스 해군조선소 부두에 백악관 마크를 단 검은색 세단과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가 줄지어 들어섰다. 차량에서 내린 인물은 로버트 오브라이언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 보좌관과 수행원들이었고, 이들은 도크에서 공사 중인 잠수함을 시찰하며 관련 현황을 보고받았다.
오브라이언 보좌관이 해군조선소를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퇴역 육군소령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군 판사로서 계급이었고, 그가 퇴역 후 변호사로 쌓아온 커리어 역시 군과는 거리가 멀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그를 국가안전보장회의 보좌관으로 임명하기는 했지만, 지난해 9월 보좌관 취임 후 지금까지 군 시설을 방문한 것은 손에 꼽을 정도다.
그런 그가 해군의 잠수함 정비와 현대화 사업을 담당하는 해군조선소를 찾아 놀라운 이야기를 꺼냈다. 바로 여기서 현대화하는 잠수함에 탑재될 신무기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버지니아급 원자력 잠수함에 극초음속 무기가 탑재될 것이고, 알레이버크급 구축함과 줌왈트급 구축함에도 차례로 이 미사일이 실릴 것”이라는 이야기를 꺼냈다.
오브라이언 보좌관이 갑자기 해군조선소를 찾아 이 같은 발언을 한 것은 하루 전 중국 관영매체에 나온 기사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의 영문판 ‘글로벌타임스’는 10월 20일 중국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라온 사진과 영상을 소개하면서 “최근 인민해방군이 최신예 H-6N 폭격기에 극초음속 미사일을 탑재한 모습이 식별됐다. 분명한 것은 이 미사일은 요격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라고 보도했다. 다분히 미국을 겨냥한 무력시위였고, 여기에 오브라이언 보좌관이 CPS 계획을 밝히며 응수한 것이다.
언론에는 크게 보도되지 않았지만, 오브라이언 보좌관의 발언은 중국에 엄청난 충격이 됐을 것이다. 버지니아급 잠수함에 CPS 능력을 부여한다는 것은 앞으로 수년 내 미국이 중국 베이징 한복판에 있는 시진핑 국가주석을 단 5분 내에 극초음속 미사일로 날려버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오브라이언 보좌관이 언급한 CPS 능력이란 미 육군과 해군이 현재 개발 중인 범용 극초음속 활공체, 일명 C-HGB(Common Hypersonic Glide Body)다. 이 무기는 미국이 러시아와의 중거리핵전력조약(INF)을 탈퇴하면서 개발을 본격화한 중거리탄도미사일 LRHW(Long Range Hypersonic Weapon)의 탄두로, 마하 5급 극초음속 활공 능력을 갖고 있다.
탄도미사일에 실려 발사된 뒤 100km 안팎 고도에서 분리돼 램제트(Ramjet) 또는 스크램제트(Scramjet) 엔진을 가동해 마하 5 속도로 요리조리 비행하며 적의 미사일 방어 시스템을 유린하는 하는 것이 C-HGB다. 마하 10~20에 달하는 탄도미사일 재돌입체보다는 느리지만, 어떤 궤도로 날아올지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현존하는 무기로는 요격이 불가능하다는 강점을 갖는다.
LRHW는 지상에서 발사되며, 한국은 베이징을 향해 LRHW를 쏘기에 가장 가까운 지정학적 위치에 있다. 미 공군기지가 자리한 군산기지에서 베이징 중심부까지 거리는 정확히 1000km로 최대 1600km 사거리를 갖는 LRHW로 베이징 타격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미국이 이 신형 미사일을 한국에 배치할 수 있으며, 이 경우 중국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후폭풍이 닥칠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사실 필자는 미 육군이 다영역작전(Multi-domain operation) 개념을 연구하면서 ‘전략 화력 미사일(Strategic Fire Missile·SFM)’이라는 이름으로 2000km급 중거리탄도미사일을 검토하던 2018년 이전부터 주한미군에 이 무기를 유치함으로써 미·중 패권경쟁 시기 한국이 확실한 미국의 친구라는 점을 트럼프 행정부에 각인시키고 이를 원자력 추진 잠수함과 한미 미사일 협정 개정 등 관련 현안의 협상 카드로 쓸 필요가 있다고 주장해왔다.
버지니아급 미 잠수함. [뉴스1]
그러나 정부는 미국의 중거리미사일은 고사하고 방어용 무기인 사드조차 중국 측 눈치를 보며 미국과 다른 목소리를 내왔고, 결국 미국은 지난해부터 육상 배치 불발에 대비한 ‘플랜 B’로 LRHW의 해상 배치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현재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C-HGB 해군 배치 계획이다.
이 정도 크기의 미사일은 현용 주력 수직발사관인 수상함용 Mk.41이나 잠수함용 Mk.45 캐니스터에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미 해군은 줌왈트급에 적용된 대형 수직발사관인 Mk.57, 버지니아급 블록 V 버전부터 적용되는 신형 버지니아 페이로드 모듈(Virginia Payload Module·VPM)에서 이 신형 미사일을 운용할 계획이다.
미사일에 탑재될 C-HGB는 육군 주도로 개발이 거의 완료돼 최근 타격실험에서 돌입 속도 마하 5, 명중 오차 6인치(15.24cm)를 기록하며 관계자들을 경악케 했다. 1000km 밖 건물의 몇 층, 몇 번째 창문까지 명중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춰 세계인을 놀라게 했던 토마호크 미사일의 미터 단위 오차보다 정밀한 장거리 타격 무기가 완성된 것이다.
이 미사일을 탑재할 버지니아급 블록 V 잠수함의 첫 번째 함정인 오클라호마(USS Oklahoma)는 지난해 발주돼 올해 건조에 들어갔으며, 2024년까지 취역할 예정이다. 탑재할 미사일은 2022년까지 완성될 계획인데, 최근 오브라이언 보좌관이 해군 CPS의 최우선 탑재 플랫폼은 개량형 버지니아급이라고 밝혔으므로, 기존 버지니아급 잠수함의 VPM을 교체해 조기 전력화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연안 작전에서 가공할 위력을 발휘하는 버지니아급 잠수함은 중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잠수함이다. 수중에서 25노트(46km/h)의 빠른 속도로 달려도 이전 세대인 로스앤젤레스급이 5노트(9km/h)의 저속으로 기동할 때 소음보다 조용하며, 낮은 수심에서도 방향 전환을 비롯한 3차원 기동성이 매우 우수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버지니아급이 얼마나 뛰어난 정숙성과 연안 작전 능력을 갖췄는지는 2018년 개봉한 영화 ‘헌터 킬러(Hunter Killer)’에 잘 묘사됐다. 이 영화는 각국 군사 전문가들로부터 “현대 잠수함 작전을 정확하게 묘사했다”고 극찬을 받았는데, 영화에서 버지니아급 잠수함은 러시아의 대잠 방어망을 뚫고 러시아 해군기지 바로 앞까지 침투하는 엄청난 능력을 보여준다.
이런 잠수함이 마하 5급의 극초음속 무기로 무장하고 서해에 들어온다고 가정해보자. 미국은 최근 서해 중간수역, 북위 36도 40분 일대까지 정찰기와 해양조사선을 보내 서해 일대를 집중적으로 정찰하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최근 서해에서 시험운항 중인 중국의 신형 전략 원자력 잠수함 096형의 수중 음문 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해양조사선이 탑재한 센서의 용도를 고려하면 서해의 해저 지형 정보를 최신화하기 위한 목적도 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버지니아급 잠수함이 산둥반도 일대까지 진출해 이 해역에서 극초음속 미사일을 발사하는 것은 중국에게는 문자 그대로 ‘재앙’이다. 이 일대에서 베이징까지 거리는 600~700km 수준으로 극초음속 미사일이 6~7분 내 도달할 수 있다.
미국 버지니아급 잠수함이 대잠 작전에서 최악의 조건을 자랑하는 서해의 수중 환경을 이용해 산둥반도 북방 해역까지 진출한다면 미사일 도달 시간은 4~5분으로 단축된다. 미국처럼 다량의 적외선 위성을 배치해 적의 탄도미사일 발사를 실시간으로 인지할 수 없는 중국은 이 미사일이 일정 고도까지 상승한 뒤에야 미사일 접근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고, 정보 처리와 경보 전파 시간을 고려하면 베이징 주요 인사들이 대피할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1~2분 정도다.
즉 이제 미국은 한국에 지상 기반의 중거리탄도미사일을 배치하지 않아도 베이징 한복판에 있는 주요 인사를 5분 안에 15cm 오차로 초정밀 기습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미국은 이런 공격용 원자력 잠수함을 최대 80척까지 보유하겠다고 선언한 상황이고, 초기 배치 전력은 늦어도 4년 안에 실전 배치될 예정이다.
베이징이 미국의 이러한 전력을 막아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극초음속무기는 속도도 속도지만 불규칙한 비행 패턴 때문에 현존하는, 그리고 가까운 미래에 등장할 그 어떤 무기로도 요격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정설이다. 자국산 무기에 대해 과장이 심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조차 6월 러시아군의 차세대 방공 시스템인 S-500이 극초음속 무기에 대응할 수 없어 대응책을 고민 중이라고 실토했을 정도다.
요컨대 미국의 해상 기반 극초음속 무기는 인도·태평양지역의 전략 환경을 바꿔놓을 게임 체인저다. 이 무기의 등장으로 중국은 이제 미국에게 절대적인 군사적 열세에 처하게 됐고, 그동안 ‘지정학적 요충지’를 자처하며 미국에게 목소리를 높여왔던 한국은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 판이다. 최근 한미 안보협의회의(SCM)에서 서욱 국방부 장관이 미국에서 그리 푸대접을 받았던 것도, 공동성명에 ‘주한미군 현 수준 유지’ 조항을 넣어달라는 우리의 강력한 요구가 묵살됐던 것도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최근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은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 파트너 14개국을 언급하며 그 파트너 명단에서 한국을 뺐다. 태국과 몽골은 물론 동티모르, 심지어 인구 2만 명의 팔라우까지 거론된 ‘미국의 파트너’ 명단에서 한국이 빠진 것이다. 지난 3년간의 실정(失政)이 한미관계를 얼마나 나락으로 떨어뜨렸는지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미국은 새로운 게임 체인저 완성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한국과 거리를 넓혀갈 것이다. 한국은 이대로 낙동강 오리알이 되든지, 필사적으로 미국을 붙잡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미국을 놓으면 미국과 함께했던 지난 70년이 한민족 역사상 가장 번영했던 역사로 기록될 것이라던 빅터 차 교수의 경고가 소름끼치도록 무섭게 느껴지는 날이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이 기사는 주간동아 1262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