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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회장은 국내외 인터뷰에서 ‘사람’ 대목이 나오면 늘 이처럼 말했다.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는 것이야 말로 삼성을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키기 위한 밑거름이라고 믿었다.
“한 명의 천재가 10만 명을 먹여 살리는 인재 경쟁의 시대”라고 했던 2002년 동아일보 인터뷰는 다른 기업에도 큰 인사이트를 줬다.
● 신경영 이후의 키워드 “천재를 키워야 한다”
1993년 ‘삼성 신경영’ 선언 당시 이건희 회장.© 뉴스1
이공계 인재의 중요성을 강조한 점도 오늘날 초일류 삼성의 밑거름이 됐다. “중국이 저렇게 갑자기 큰 것은 장쩌민, 후진타오 같은 이공계 출신들이 최고 지도부에 포진해 과학기술 분야의 엘리트들을 키우고 있기 때문”이라며 “우리나라는 똑똑한 학생들이 법대나 의대에만 가려고 하는데 이대로 가다가는 기술경쟁력, 산업경쟁력이 떨어지고 결국 국력이 쇠약해지고 만다”고 우려했다.
한국 교육제도에도 관심이 컸다. 이 회장은 “천재는 확률적으로 1만 명, 10만 명에 한 명 나올 정도의 사람이기에, 대한민국에서 잘 해야 400~500명”이라며 “그런데 이런 천재들은 보통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이 쉽지 않다. 일반적인 교육으로는 천재성을 오히려 죽이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고 했다.
● “나는 시간이 있고, 전문가를 안다. 그래서 듣는다”
“회장님 곁에는 다양한 이름의 ‘고문’들이 많았다.”아버지와 함께 삼성의 반도체 사업 진출을 결정할 때에도, 미래를 내다본 대규모 투자를 결정할 때에도 이 회장은 ’경청‘했다. 특히 1987년 4Mb D램 개발 당시 반도체 설계 공법을 쌓는 방식으로 결정한 일도 유명하다. 다른 반도체회사들이 집적회로를 웨이퍼를 파서(트렌치형) 넣을 때 웨이퍼에 쌓았기(스택형) 때문에 대용량을 남보다 빨리 개발해 1992년 세계 D램 시장 1위에 오를 수 있었다. 삼성전자 출신의 사장급 인사는 “반도체 공법 하나를 정할 때에도 주니어 기술자들 이야기까지 귀담아 듣고 공부한 뒤 결정을 내렸다”고 회상했다.
김현수기자 kimhs@donga.com
서동일기자 d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