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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내팽개쳐진 의사봉[현장에서/정성택]

입력 | 2020-10-26 03:00:00


국회 과방위 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이원욱 의원(서 있는 사람 왼쪽에서 두 번째)이 23일 국정감사 정회를 선포하며 의사봉을 내리치고 있다. 국감 화면 캡처

정성택 문화부 기자

“얻다 대고 당신이야!”(이원욱 과방위 위원장)

“나이도 어린 ××가.”(박성중 국민의힘 과방위 간사)

23일 오후 11시 반경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 막바지에 나온 말이다. 이날은 과방위 국정감사 마지막 날이었다. 7일부터 시작된 국정감사를 하면서 묻지 못했던 내용에 대해 과방위 의원들이 피감기관장과 증인을 불러 답을 듣는 자리였다. 이날 13시간 넘게 이어지던 국정감사에서 국민의힘 간사 박성중 의원(63)과 상임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이원욱 의원(58)의 막말 고성 다툼에 회의장은 한순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발단은 질의 시간이었다. 박 의원은 자신의 질의 순서가 되자 이 위원장에게 직전 질의에서 아껴놨던 1분을 더 쓰려고 했는데 질의 시간(3분) 종료 뒤 이 위원장이 쓰지 못하게 했다며 사과를 요구했다. 이에 이 위원장은 “지금까지 다른 의원들보다 질의 시간을 많이 줬다”며 박 의원에게 주어진 질의 시간을 넘긴 걸 먼저 사과하라고 맞섰다.

다툼은 ‘당신’이란 단어에서 폭발했다. 박 의원이 발언 중에 이 위원장을 ‘당신’이라고 하자 이 위원장이 언성을 높였다. 이 위원장이 “질문하세요, 질문해 질문해” 하자 박 의원이 “똑바로 하세요”라고 맞받아쳤고, 이 위원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박 의원에게 다가갔다. 박 의원은 같이 일어나 “확 쳐버릴라”라고 했고, 이 위원장은 “야! 박성중은…”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의원은 “나이도 어린 ××가”라며 욕설을 했다.

여야 과방위 의원들이 말려도 소용없었다. 다툼은 4분 넘게 이어졌고 결국 국정감사는 중지됐다. 11분가량 정회 끝에 이어진 국정감사는 시간에 쫓기듯 자정에 끝났다. 자정을 넘겨 추가 질의를 계속하려면 여야가 합의를 해야 했지만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다. 시간 연장을 “동의할 생각이 없다”는 조승래 민주당 간사의 말에 여야 다툼은 또 이어졌다. 이 위원장이 속개 후 “과방위가 이렇게 열심히 하는 것은 의원님들이 준비도 많이 하시고 질의할 것도 많아서 그런 게 아닌가 생각한다. 오늘 질의하신 분들은 국민이 평가하는 최고의 국회의원으로 남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한 말이 무색해지는 장면이었다.

국정감사는 국회의원이 국민을 대표해 정부 부처 등 국정 전반을 비판적으로 검증하는, 1년에 한 번밖에 없는 중요한 국사(國事)다. 질의 시간으로 촉발된 다툼으로 허비해 버린 시간은 단순히 계산해도 의원 5명이 추가 질의를 할 수 있는 시간이다. 시간은 차치하고서라도 밤늦은 시각 이런 다툼이 있었다는 사실을 국민은 어떻게 생각할까.

이 위원장은 정회를 하며 의사봉을 세 번 두드리다가 의사봉을 바닥에 내팽개쳤다. 의사봉만이 아니다. 국회의 권위와 최소한의 품격, 성숙함도 내팽개쳐진 것 같아 씁쓸했다.

정성택 문화부 기자 neon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