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아사히신문 공동기획 스포츠 우정 보여준 빙속여제 이상화
서울의 한 기획사 사무실에서 이상화 씨가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시절 경쟁자이자 친구였던 일본 고다이라 나오 선수와의 인연에 대해 말하고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지금은 은퇴한 ‘빙속 여제’ 이상화 씨(31)에게 일본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고다이라 나오(小平奈緖·34) 선수와 쌓아온 오랜 우정 때문이다. 2018 평창 겨울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500m 경기 후 서로를 격려하는 모습은 세계 스포츠팬에게 깊은 감동을 안겼다. 둘은 어떻게 국경을 뛰어넘는 우정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고다이라 선수를 언제 처음 만났나.
―고다이라 선수가 세 살 많은데 호칭을 어떻게 하나.
“나는 나오라고 부르고, 나오는 상화라고 부른다. 나오가 ‘센파이(선배)라고 불러라’고 했지만 나는 나오라고 불렀다. 나오가 나를 매우 귀여워해 줬다.”
―서로 응원해 주는 세리머니가 있나.
“항상 둘이서 조용히 하이파이브를 한다. 시합에 방해되지 않도록 내가 손을 아래로 내리면 나오가 지나가면서 치고 간다.”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 당시 이상화 (왼쪽), 고다이라 나오 선수.
―같은 조에서 경기하면 1, 2등이 갈린다.
“경기 끝나면 서로 잘했다고 한다. 내가 1등 하면 나오가 한국말로 ‘상화 잘했어’라고 말한다. 내가 지면 나오는 ‘저쪽 코너에서 넘어질 뻔했다’면서 위로한다. 고마웠다.”
―2018년 평창에서 고다이라 선수가 따뜻하게 안아주는 모습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우리는 서로 메달을 따면 항상 그래왔다. 내가 2010년 밴쿠버 올림픽, 2014년 소치 올림픽에서 메달 땄을 때도 나오는 내게 와서 악수하면서 안아줬다. 2018년에도 정말 당연하게 서로 축하하면서 안아줬는데 그렇게 크게 비칠지 몰랐다.”
―고다이라 선수와의 경쟁이 부담스럽지 않았나.
“나오가 일본 선수가 아니라 독일이나 캐나다 선수였으면 이렇게 힘들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도 했다. 언론이 나오와의 라이벌 관계를 강조하다 보니 ‘일본 선수에게 지지 말라’는 압박이 심해 제대로 잠을 못 자는 날도 있었다.”
―치열하게 경쟁했는데, 경기 후 그렇게 쉽게 털어버릴 수 있나.
―고다이라 선수가 지난해 이 씨의 결혼식 축하 영상에서 ‘상화는 외로움 많이 타니까 잘 보살펴 주라’고 했다. 어떤 외로움을 말하는 것인가.
“정상을 지키는 외로움인 것 같다. 시합 준비하면서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만의 싸움을 했다. 그런 걸 나오가 잘 헤아려 줬다. 나오도 지금 똑같은 것을 느끼고 있을 텐데, ‘충분히 지금까지 잘했다’고 격려하고 싶다.”
―요즘 한일 관계가 좋지 않다.
“나는 운동을 하다 보니 일본 친구들이 많다. 스포츠 하는 사람에게는 (경쟁자인) 친구가 도움이 된다. 한일 관계가 빨리 개선됐으면 좋겠다.”
이상화는 누구 ―1989년 강원 원주 출생
―한국체육대, 고려대 교육대학원 졸업
―토리노 겨울유니버시아드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 1위(2007년), 밴쿠버 겨울올림픽(2010년)과 소치 겨울올림픽(2014년)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 금메달, 평창 겨울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 은메달(2018년)
―대한체육회 체육대상(2014년), 한일 우정상(2019년) 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