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신이현 작가·프랑스인 남편 도미니크 에어케(레돔) 씨
“와인 병과 코르크 뚜껑, 상표를 최저 비용으로 잡고, 스페인에서 한국까지 오는 물류비용, 통관비용, 주세, 창고, 그리고 각 마트로 진열될 때까지의 비용만 합쳐도 병당 3900원이 넘을 것 같은데.” 아무리 따져도 어떻게 가능한 가격인지 모르겠다. 겨울 가지치기부터 시작해서 농사짓는 노동력, 포도를 딸 때 기계로 훑어가는 방식으로 했을 때의 비용, 탱크에 넣어 발효와 숙성을 하는 시간적 비용까지 덧붙이면 가격에 대한 의문은 미스터리에 가깝다.
“일단 맛을 한번 보자고.” 코르크 뚜껑을 열어 맛을 보았다. 놀라웠다. 쓰레기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맛이 괜찮았다. 우리는 멍하니 와인 한 잔을 다 마셨다. 무엇이라고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런 맛의 와인을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팔아버리다니, 스페인 첩첩산중 어딘가의 농부에게 돌아갈 몫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득템’이라며 열 병씩 사 들고 가는 사람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그냥 조금 서글픈 마음이 들 뿐이다.
레돔의 고향인 프랑스 알자스의 식당 와인리스트가 그렇다. 와인 메뉴판 리스트 70% 이상이 알자스 와인으로 이루어져 있다. 식당 주인의 자기 지역 술에 대한 애정도 있지만 소비자들이 그것을 더 원한다. 알자스에서는 모두가 알자스 와인만을 마시고 싶어 한다. 마찬가지로 노르망디에 가면 모두가 노르망디 시드르만을 마시기를 원한다. 알자스 와인이 제일 많이 팔리는 것도 알자스 지역이고, 노르망디 시드르가 제일 많이 소비되는 곳도 노르망디이다. 정말 좋은 알자스 와인은 알자스에 가야만 마실 수 있다. 그것이 참 좋았다. 알자스에서 알자스 와인을 마시면 알자스를 통째로 알아버리는 기분이 들었다.
마트도 마찬가지다. 엄청난 양의 지역 와인만을 따로 진열해서 판매를 한다. 와인뿐만 아니라 알자스의 특산품인 돼지 훈제 넓적다리와 쇠고기 소시지, 뮌스터 치즈, 알자스 과자, 알자스 스파게티, 알자스 식초 같은 먹거리뿐만 아니라 그릇과 행주 등 수많은 지역의 물건들로 채워져 있다. 알자스에서 돌아올 때는 트렁크 가득 온갖 알자스 술과 음식과 물건들로 채워진다.
우리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먼 듯하다. “너무 비싸잖아!” “맛도 없네!” 이렇게 말하긴 쉽다. 농산물은 때로는 비싸고 때로는 엉망이다. 그래도 지역 농산물의 가치를 이해하고 애정을 가져주면 좋겠다. 싸다고 만세를 부르는 것을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윤만을 생각하는 소비는 아무 발전이 없다. 점점 더 대량생산의 종이 되고 작은 농산물은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될 것이다. 모두 사라질 수도 있다. 좀 모자라지만 더 많이 사랑해주면 안 될까? 부족할 때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그 손길로 우리는 낭만적인 사람들이 될 수 있다.
※ 프랑스인 남편 도미니크 에어케(레돔) 씨와 충북 충주에서 사과와 포도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습니다.
신이현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