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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기존기업 경쟁때 정부가 ‘기업 보호’ 개입하면 결국 실패”

입력 | 2020-10-27 03:00:00

‘노벨 경제학상’ 밀그럼 교수 인터뷰




올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밀그럼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26일 동아일보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데 경매가 훌륭한 도구가 되지만 그보다 올바른 정책을 만드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고 했다. 밀그럼 교수가 미 캘리포니아 팰로앨토 자택에서 활짝 웃고 있다. 팰로앨토=AP 뉴시스

“경쟁으로부터 기업을 보호하는 정책은 장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혁신 기업의 등장으로 신구 산업 간 갈등이 생기더라도 정부가 경쟁 과정에 직접 개입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경매의 대가’ 폴 밀그럼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72)는 26일 동아일보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밀그럼 교수가 한국 언론과 인터뷰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경제학의 게임이론을 경매이론으로 체계화한 그는 무선주파수 같은 특수 공공재가 아닌 이상 인위적인 규제로 시장의 경쟁을 제한하면 사회 전체의 후생(이익)이 감소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공유경제, 플랫폼경제 등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등장하는 신산업과 관련해 정부가 기존 산업을 보호하는 ‘보호자’ 역할을 해서는 안 된다고 역설했다. 밀그럼 교수는 “신기술 등장에 따른 기업 간 경쟁은 더 나은 상품과 서비스로 이어질 때가 많다”며 “기술 변화 과정에서 (신기술에 의해) 대체되는 노동자에 대한 보호 장치는 필요하지만 정부가 경쟁 과정에 직접 개입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에서 우버, 타다 같은 공유차량 산업이 기존 운송업계와의 갈등으로 공전(空轉)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 “일부 국가나 지역에서는 택시업계가 자체적으로 애플리케이션(앱)을 개발하는 등 소비자 이익을 늘리는 방향으로 경쟁이 일어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부로선) 이런 경쟁을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미국에서도 ‘유통 공룡’ 아마존의 독주에 대한 우려가 있지만 경쟁을 통해 아마존과 차별화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의 시도가 나타나고 있다는 게 밀그럼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자본주의에서는 승자와 패자가 있기 마련”이라며 “경쟁에서 기업을 보호하는 건 결국 지는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밀그럼 교수는 과도한 비용을 치르는 ‘승자의 저주’ 같은 사회적 손실은 최소화하면서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할 수 있을지를 연구해 ‘주파수 경매’라는 획기적인 경매기법을 고안했다. 이 경매기법은 1994년 미국을 시작으로 대부분의 국가가 도입했으며 공공재뿐만 아니라 구글, 페이스북 등 온라인 검색 광고 등에도 활용되고 있다.

그는 “경매는 우리 모두에게, 매일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모든 문제를 경매로 해결할 순 없다”고 했다. “주파수 같은 공공재나 사업 면허는 정부가 경매를 통해 효율적으로 자원을 배분할 수 있지만 경매는 도구일 뿐”이라며 “그보다 올바른 정책을 만드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유행(팬데믹) 국면에서 백신이나 의료장비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배분할 수 있을지 묻는 질문에도 “백신 같은 자원을 배분하는 데 경매는 윤리적 방식이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또 인공호흡기 등 방역자원을 두고 경쟁하는 것은 단순히 가격을 올리고 의료체계에 부담만 줄 뿐이라고 했다.

밀그럼 교수는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재선에 반대하는 경제학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그를 포함한 850명의 미국 경제학자는 공개서한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단 한 번의 임기 만에 미국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쳐 버렸다”며 “트럼프 대통령을 해임하는 투표를 통해 민주주의를 되찾아 달라”고 촉구했다.

밀그럼 교수는 사제(師弟)에서 학문적 동지가 된 로버트 윌슨 스탠퍼드대 명예교수(83)와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미시간대 수학과를 졸업한 그는 직장생활을 하다가 뒤늦게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에 입학한 뒤 당시 스승이던 윌슨 교수의 권유로 학자의 길로 들어섰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가 발표된 날 밀그럼 교수가 노벨위원회의 전화를 받지 못해 이웃에 사는 윌슨 교수가 새벽에 직접 밀그럼 교수의 집을 찾아가 수상 소식을 알려주기도 했다.

밀그럼 교수는 “우리 둘 다 어떤 면에선 ‘너드(nerd·괴짜)’인 것 같다”며 “(경제학자들은) 때때로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문제에 대해 연구하지만 나는 좀 더 현실적인 연구를 하고 싶다”고 했다.

지난해 정부, 기업 등에 경매 관련 컨설팅을 해주는 회사 ‘옥셔노믹스’를 설립한 그는 “노벨상 수상 직후 600통이 넘는 이메일에 답해주느라 바쁘게 보내고 있지만 내 삶은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폴 밀그럼 미 스탠퍼드대 교수△ 1948년 미국 디트로이트 출생
△ 1970년 미시간대 수학과 졸업
△ 메트로폴리탄보험사 및 넬슨워런컨설팅 근무
△ 1979년 스탠퍼드대 경영학 박사
△ 1979∼1983년 노스웨스턴대 경제학 교수
△ 1983∼1987년 예일대 경영학 교수
△ 1987년∼현재 스탠퍼드대 경제학 교수
△ 2020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
남건우 기자 w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