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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사시절 과학동아 연재… ‘글쓰는 과학자’ 첫발 내디뎌

입력 | 2020-10-27 03:00:00

[내 삶 속 동아일보] <17> 정재승 KAIST 교수




저서 ‘정재승의 과학콘서트’와 동아일보를 품에 안은 정재승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는 “동아일보가 국내 과학자들이 대중 눈높이에 맞는 글을 쓰는 기회를 줬다”고 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정재승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48)가 중학교 1학년 시절 물리 선생님은 매달 과학동아가 학교에 배달될 때마다 정 교수를 따로 불렀다. 마음에 드는 기사나 칼럼을 하나 정한 뒤 이를 바탕으로 앞으로 변화할 미래의 모습을 상상해 글짓기를 해오는 숙제를 내줬다.

최근 서울 용산구 사무실에서 만난 정 교수는 “교과서 수식을 외워 문제를 푸는 것보다 과학자들이 개발한 기술로 우주와 자연의 신비를 밝히는 기사를 읽는 게 훨씬 재밌었다. 과학동아를 보면서 과학자의 꿈을 키웠다”고 했다.

정 교수는 KAIST 석사 과정을 밟던 1995년 과학동아와 인연의 끈이 다시 이어졌다. 영화 동아리 회장이었던 정 교수가 학내 신문에 영화 칼럼을 연재하던 것이 대학 선배인 당시 곽수진 과학동아 기자의 눈에 띄었던 것. 이를 인연으로 정 교수는 과학의 눈으로 영화를 분석하는 ‘시네마 사이언스’라는 칼럼 연재를 시작했다. 정 교수는 “어렸을 때 과학동아를 보면서 과학자의 꿈을 키웠는데, 원고 청탁을 받으니 감격스러웠다. 첫 회가 나간 달 과학동아가 완판됐다고 한 게 기억난다”고 했다.

‘시네마 사이언스’는 원래 6개월만 연재할 계획이었지만 5년 6개월간 이어졌다. 당시 정 교수는 칼럼 원고 첨삭을 담당했던 기자들에게 다양한 글쓰기 수업을 받았다고 한다. 연재하는 동안 정 교수의 원고를 담당한 ‘글쓰기 선생님’은 6명이었는데, 원하는 글쓰기 스타일이 전부 달랐기 때문. “누구는 짧고 명료한 글쓰기를 원했고, 누구는 예시를 들어 쉽게 설명하길 원했어요. 대중적 눈높이에서 과학적 글쓰기를 할 수 있도록 ‘과외’를 받은 거죠.”

정 교수는 동아일보에서 2001년 ‘정재승의 음악 속의 과학’, 2009년 소설 ‘눈먼 시계공’을 연재했다. 2011년 출간 이후 120만 권 가까이 팔린 저서 ‘정재승의 과학콘서트’에도 그동안 연재한 칼럼 일부가 들어갔다. 소설가 김탁환과 함께 동아일보에 연재한 SF소설 ‘눈먼 시계공’은 2010년 단행본 출간 이후 10만 권 가까이 팔렸다.

‘다윈 지능’ ‘통섭의 식탁’ 등을 펴낸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도 정 교수와 비슷한 시기인 1999∼2001년 ‘최재천의 책꽂이’라는 동아일보 칼럼을 연재했다. 정 교수는 “동아일보가 2000년대 이후 국내 과학계 저자들을 발굴하면서 해외 석학의 책을 그대로 번역하던 국내 과학출판계 문화를 바꿔놨다”며 “우리 과학자가 우리말로 과학을 설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것”이라고 했다.

정 교수는 글쓰기를 배운 것이 과학자로서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지난해 영국 네이처지에 3년 반 동안 연구한 내용을 4, 5쪽 분량의 논문으로 압축해야 했는데, 칼럼을 쓴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됐다는 것.

“과학자가 실험을 설계하고 데이터를 분석해 원하는 결과를 얻더라도 그걸 세상에 알리려면 글쓰기를 통해야 합니다. 동아일보와 함께 쌓은 글쓰기 경험이 결국 더 나은 과학자가 되도록 도움을 준 거죠.”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