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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럿 연방대법관 후보 상원 인준 최종 통과…美 보수화 ‘가속’

입력 | 2020-10-27 13:31:00


에이미 코니 배럿 미국 대법관 지명자가 상원의 최종 인준을 통과했다. 이에 따라 대법원의 보수 대 진보의 구성이 6대 3으로 기울어지면서 사법부는 물론 미국 사회 전체가 장기 보수화의 길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상원은 26일(현지 시간) 30시간이 넘는 토론 끝에 배럿 대법관 지명자의 인준안을 표결에 붙여 52대 48로 통과시켰다. 53명의 공화당 의원 중 다음 주 상원 선거에서 낙선 가능성에 고전하고 있는 메인주의 수전 콜린스 의원만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졌다.

배럿 대법관의 인준은 지난달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이 타계한 뒤 지명에서부터 상원 청문회, 법사위원회 표결을 이날 상원 통과까지 한 달여 만에 속전속결로 처리됐다. 그는 미 사법부 231년 역사에서 5번째 여성 대법관이 된다. 또 151년 만에 야당에서 단 1표도 얻지 못한 대법관이 되는 것이라고 뉴욕타임즈는 전했다. 그만큼 대선을 앞두고 공화당과 민주당이 각각 똘똘 뭉치면서 양극화된 미 의회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다.

민주당은 대선을 코앞에 두고 강행되는 이번 인준 절차가 불법적이고 여당 원내대표의 권한 남용이라고 비판해왔다. 임명시 ‘오바마케어’라고 불리는 전국민의료보험법이 폐기되면서 수백 만 명의 미국인들이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된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공격해왔다. 그러나 공화당이 다수인 상원은 “헌법에 규정된 적법한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며 배럿 지명자의 자질은 충분히 검증됐다”며 절차를 밀어붙였다.

배럿 대법관의 취임으로 미국 대법관 9명의 구성은 보수 쪽으로 완전히 기울어지게 됐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이 재임기간 중 임명한 닐 고서치, 브렛 캐버노 대법관도 모두 보수 성향으로 분류된다. 대법관은 종신직인데다 배럿 지명자는 48세여서 앞으로 수십 년간 판사직을 수행할 수 있다. 독실한 가톨릭신자인 배럿 대법관은 깊은 종교적 신념에 따라 낙태에 반대하는 등 보수적 가치관을 갖고 있다.

진보 진영은 여성의 낙태권을 보장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머지않아 뒤집힐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전국민의료보험법도 폐기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관련 소송은 당장 11월 10일에 심의가 예정돼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9월 “오바마케어가 대법원에서 폐기되면 더 좋고 저렴한 의료시스템으로 대체될 것”이라고 밝혔고 자신이 지명한 대법관이 옳은 결정을 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뉴욕타임즈에 따르면 배럿 지명자는 이르면 27일부터 곧바로 업무 시작이 가능하다. 그는 이날 상원 인준 직후 백악관에서 열린 한밤중의 선서식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선서했다. 대법관 업무를 시작하는 그의 앞에는 트럼프 대통령 관련 사건은 물론 6일밖에 남지 않은 대선 관련 소송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경합주인 노스캐롤라이나와 펜실베이니아, 위스콘신 등지에서 우편투표 접수 마감시간을 연장할지 여부를 놓고 법정싸움이 진행 중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관련된 사건을 배럿 지명자가 제척할지 여부에도 관심이 쏠린다. 판결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의 납세 및 재정 관련 기록들을 검찰에 제출해야 할지 여부가 결정된다. 뉴욕타임즈에 따르면 대법관 각자가 사건에서 사건의 제척 여부를 결정할 수 있지만 지금까지 대법관들은 자신을 임명한 대통령 관련 사건을 마다하지 않았다.

배럿 지명자의 인준은 보수 지지자들을 막판에 결집시킬 또 다른 선거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로이터통신은 “공화당이 장악한 상원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대선 전의 중요한 승리를 안겨줬다”고 보도했다.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