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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환 교수의 新국부론]한국판 뉴딜에 ‘권역별 행정통합’‘지역 명문대학 육성책’ 포함돼야

입력 | 2020-10-29 03:00:00


지난 7일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의원의 ‘30-50클럽 국가의 수도권 집중도 현황’ 조사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18년 기준 국내총생산(GDP)의 51.8%, 일자리의 49.7%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이는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30-50클럽 국가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다. 2위인 일본과 비교해도 격차가 매우 크다. 일본은 GDP 33.1%, 일자리 30.8%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이어 프랑스(GDP 31.2%, 일자리 22.8%), 영국(23.6%, 17.0%), 이탈리아(11.2%, 10.6%), 독일(4.4%, 4.5%), 미국(0.7%, 0.5%) 순이다. 더 심각한 것은 한국경제의 수도권 집중도는 시간이 갈수록 심화된다는 것이다. 2019년 말 기준 수도권의 인구는 50%를 넘었고, 대학은 40%가 수도권에 몰려 있다. ‘헬조선’의 이유다.

수도권 경제력 집중→인구쏠림→부동산 가격 급등→생활비용 증가→불확실한 미래→결혼·출산 기피→인구절벽→지방소멸로 이어지는 헬조선 연결고리를 끊어야 한다. 박 의원은 “특단의 근본 처방이 없으면 수도권과 지방이 공멸할 수 있다. 지방에 투자하고 일자리를 만드는 균형발전 뉴딜 인센티브 제도를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지역균형 뉴딜, 구호가 아니라 제대로 짠 그림 실행이 관건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3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2차 한국판 뉴딜 전략회의에서“디지털·그린·사회안전망 3개 분야로 추진된 한국판 뉴딜의 기본 정신에 지역균형 뉴딜을 추가한다”고 밝혔다. 국가 발전의 축을 지역 중심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지역균형 뉴딜은 스마트시티 구축 등 중앙정부 추진 지역사업, 지자체 주도형 뉴딜사업과 공공기관 선도형 뉴딜사업으로 나뉜다. 2025년까지 한국판 뉴딜에 투자하는 160조 원 중 75조 원 이상이 지역에 투입된다. 애초 문 정부는“연방정부에 버금가는 지방분권을 실현하겠다”면서 국가균형발전을 국정 과제로 택했지만 성과는 없었다. 정책 추진의 핵심은 사탕발린 말이나 약속이 아니라 제대로 짠 그림과 그 실행에 있다. 정권 재창출을 위한 선거용 예산 투입이 돼선 안 된다. 젊은이들이 왜 서울로 몰려가고 있는지 냉철하게 고민해 보라. 단언컨대 지방에 젊은이들이 돌아와 살고 싶은 도시로 만들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다. 젊은이들이 없는 지역에 왜 기업이 들어오겠는가. 좋은 대학과 스타트업들이 있으면 젊은이들은 모여든다.


초광역지역정부 구성, 다극체제 지역균형 뉴딜 정책 담아야



올해 출생자는 27만 명 내외로 추정된다. 향후 30년 내 전국 시군구 40% 이상이 사라지는 것은 정해진 미래다. 급기야 부·울·경, 광주·전남, 대구·경북이 행정통합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이 세 지역은 원래 각자 한 뿌리였다. 규모의 경제 집단을 만들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역균형 뉴딜에 이러한 ‘행정통합 정책’이 포함돼야 한다. 일제강점기에 정해진 지금의 행정구역은 인구와 생활권 등 불합리한 점이 많다. 수도권 일극체제를, 세종중부권, 동남권, 서남권, 제주권으로 나누어 5개의 다극체제 메가리전(mega region)으로 가는 것이 하나의 대안이다. 국제공항, 교통, 대학, 문화, 경제 등 세계화 시대에 걸맞은 인프라 시설도 권역별로 갖추자. 재정과 시간이 더 들더라도 그랜드 디자인을 지역균형 뉴딜에 포함시켜야 미래가 있다. 헌법에는“정치ㆍ사회ㆍ경제ㆍ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국가는 그 균형 있는 개발과 이용을 위하여 필요한 계획을 수립하고… 지역 간의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하여 지역경제를 육성할 의무를 진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국가는 그 의무를 다 하지 않고 있다.


‘전국이 골고루 잘사는 독일’의 국가균형발전 정책



연방국가인 독일은 헌법에 명시된 “독일 전역의 생활수준이 비슷해야 한다”를 가장 잘 실현한 국가 중 하나다. 수도 베를린은 인구 350만여 명으로 독일 내 도시 경쟁력에서 20위권 밖에 있다. 행정부처는 베를린과 본에 분산되어 있고 주요 국가기관은 지역에 골고루 흩어져 있다. 기업의 경우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물론 동일 업종이 특정 지역에 쏠려 있지 않다. 독일경제의 성장 동력인 ‘히든 챔피언’ 기업의 본사 대부분은 인구 5만에서 10만 사이의 도시에 있는데 공항, 문화시설, 대학 등이 전국에 흩어져 있기에 가능하다. 독일은 프랑크푸르트, 뮌헨, 함부르크, 베를린 등 4곳에 국제허브공항을 두고 있다. 세계화 시대에 지역주민을 위한 정책이다. 대학도 전국적으로 흩어져 있다. 아헨, 뮌헨, 슈투트가르트, 드레스덴, 베를린 공대 등 기술연구를 선도하는 9개의 공과대학(TU9)이 그들이다. 독일의 4대 연구기관인 막스플랑크(MPI), 프라운호퍼(FhG), 헬름홀츠(HGF), 라이프니츠(WGL) 산하 135개의 연구소가 대학 내 혹은 인근에 분포되어 기업과 클러스트를 구성해 창업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다.


정부출연 연구기관 및 수도권 공공기관 추가 이전 미뤄선 안 돼

 

국내 대학 평가 상위 20위 내 95%인 18개가 수도권에 몰려있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시리즈 2번째 글에서 ‘수도권 대학을 전국으로 이전하는 특별법을 제정하자’라는 제안을 한 것도 이 때문이다. 대덕연구단지에는 한국기계연구원, 한국항공연구원 등 36개의 정부 출연 연구기관과 37개의 민간 연구기관들이 집적돼 있다. 기계연구원은 기계산업이 집중되어 있는 창원, 항공연구원은 항공산업이 있는 진주로 이전하는 등 연구기관을 관련 산업이 있는 지역으로 이전하는 것도 추진하자. 권역별 특성화대학을 육성하여 대학중심 연구 창업생태계를 조성해야 지역에도 히든챔피언이 있을 수 있다. 정부가 계획하고 있는 수도권 공공기관 122개의 추가 이전도 미뤄선 안 된다. ‘공공기관 지방이전 국가 경쟁력 해친다’라고 주장하는 중앙언론과 수도권 일부 시민들에게 고언을 드린다. ‘서울공화국으로는 우리 모두가 죽는다’라고 말이다. 공공기관 선도형 뉴딜사업은 지역 대학중심 연구·창업 클러스트 구축으로 재설계되어야 한다. 이것이 지속 가능 대한민국 호를 만드는 길이다.

전호환 부산대 교수 전 부산대 총장, 동남권발전협의회 상임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