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일 지음·922쪽·1만9800원·동서문화사
폭풍설 몰아치는 영하 40도 개마고원 낭림산맥 칼바람 속에 17일간 한국전쟁 최대 사투가 벌어졌다. 세계전쟁사에 비장한 겨울전쟁으로 기록된, 스탈린그라드 독소전쟁 버금가는 혹독한 전쟁이었다. 스미스 장군이 이끄는 2만5800명의 미 해병이 쑹스룬 제9병단장이 지휘하는 12만8000명의 중공군에 겹겹이 포위된 생지옥 탈출 사투. 왜 전쟁을 하는지, 무엇을 위하여, 누구를 위하여, 주린 짐승처럼 목숨을 앗아버려야 하는지 그들은 알지 못했다.
70여 년이 지난 오늘도 개마고원 장진호 얼음장 밑에는 수많은 젊은 영혼이 기억 속에서, 역사 속에서 잊힌 채 쓸쓸히 누워 있다. 지금도 개마고원 골짜기에 쏟아지던 포화처럼 봄여름이면 석남화가 피었다 진다. 겨울바람이 불면, 얼어붙은 장진호 빙판 위로 겨울철새들이 울음을 흘리면서 날아가리라. 그 골짜기 그 호수 곳곳에 1950년 12월 겨울전쟁에서 스러져간 미 해병 병사들과 중공군 병사들을 위한 레퀴엠이 아름답고도 장엄하게 울릴 것이다.
‘불과 얼음 17일 전쟁 장진호’는 그 처절한 전투에서 미 해병 병사들과 중공군 병사들, 한국전쟁의 비극을 긴박감 넘치게 그려낸다. 전쟁은 이데올로기라는 이름으로 그럴싸하게 포장되곤 했다. 이데올로기가 섞여 들어간 자리에는 인간다움이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춘다. 적을 죽이는 것이 대의가 되어 그들은 망설이지 않고 서로를 보는 대로 총을 쏘아댄다. 장진호 전투는 바로 그러한 냉전시대의 이데올로기가 시리도록 날카로운 갈등으로 폭발한, 한국전쟁에서도 가장 고통스럽고 쓰라린 상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