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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테러조직에 무기 팔다 걸린 북한[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 사이]

입력 | 2020-10-29 03:00:00


2018년 3월 김정은이 베이징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부부와 함께 차를 마시고 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같지만, 김정은은 권력을 잡은 뒤 6년이 넘어서야 중국을 방문했다. 동아일보DB

주성하 기자

북한이 중국 신장(新疆)위구르자치구의 분리 독립 무장 세력에 자동보총 등 무기를 넘겨주다 적발된 사건이 3년 전 발생했다. 더구나 2017년 10월 18일 열린 제19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19차 당 대회)를 불과 일주일 앞둔 민감한 시점이었다. 북-중 혈맹을 자랑하는 양국 간에 일어난 일이라곤 상상하기 힘든 사건이다.

중국 현지 소식통들을 통해 파악한 사건의 내막은 이렇다. 당시 랴오닝(遼寧)성 콴뎬(寬甸)만족자치현 공안당국은 북한에서 수상한 트럭 2대가 강을 건너온 정황을 포착했다. 평안북도 벽동군 동주리와 마주하고 있는 콴뎬현 다시차(大西岔)진 린장(臨江)촌은 중국이 북한에서 목재를 실어올 때 화물차가 경유하는 대북 ‘임시통상구(화물경유지)’로 활용되기에 평소에도 북한에서 트럭들이 자주 드나든다.

첫 차량은 변방대 초소를 통과해 압록강 옆 변강 고속도로를 내달리다 단속에 걸려 체포됐다. 첫째 차량이 체포되는 것과 동시에 이 차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수십 km 떨어져 오던 둘째 차량은 사라졌다. 이 지역은 무인지경이 많아 단둥에서 파견된 무장경찰대가 일주일이나 꼬박 뒤져 깊은 수림 속에 처박힌 두 번째 차량을 찾아냈다.

차량들에는 북한산 자동소총(AK-47), 권총 등 각종 총기가 가득 적재돼 있었다. 트럭을 몰고 가던 사람들은 신장위구르 무장 세력과 연결된 이들이었다.

조사 결과 이들은 “무기를 넘겨줄 테니 압록강까지 와서 받아가라”는 북한의 제안을 받고 움직이던 중이었다. 그런데 북한의 제안이 파격적이었다. “대금은 무기가 신장에 도착한 뒤 지불해도 된다”는 것. 무기 밀거래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조건이었다.

이 때문에 중국에선 북한이 돈 때문에 무기를 팔고자 한 게 아니라 일부러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자극하기 위해 쇼를 벌였다고 분석했다. 북한이 실제 신장에 무기를 전달하기보다는 일부러 정보를 흘려 중국에 적발되게 만들었다는 의미다.

북한이 그럴 동기도 충분했다. 사건 한 달 전인 2017년 9월 3일 북한은 6차 핵실험을 감행한 뒤 “대륙간탄도로켓(ICBM) 장착용 수소탄 시험을 성공적으로 단행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9월 11일 ‘대북 제재 결의 2375호’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이 결의안에 따라 대북 석유 수출은 연간 400만 배럴로 제한됐고, 정유 제품 수출은 기존보다 55% 줄어든 200만 배럴을 상한선으로 제한됐다. 액화천연가스(LNG)의 수출은 물론이고 직물, 의류 중간제품 및 완제품 등의 섬유 수출까지 전면 금지됐다. 북한과의 합작 사업 및 유지·운영도 전면 금지됐으며, 해외 파견 북한 근로자의 신규 고용마저 중단됐다. 이 모든 게 북한으로선 치명적 타격이 되는 조치였다.

이 결의안은 중국의 협조를 절대적으로 필요로 했는데 중국도 자국 19차 당 대회를 한 달 앞둔 시점에 북한이 핵실험을 진행한 것에 분노했다. 그래서 결의안이 채택되자마자 단둥을 비롯해 북-중 세관에서 유엔 결의안에 해당되는 수출입 물자를 압수 및 차단했다.

그러자 북한이 중국을 대놓고 비난하기 시작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중국 정부와 언론의 실명을 거론하며 “다른 주권 국가의 노선을 공공연히 시비하며 푼수 없이 노는 것을 보면 지난 시기 독선과 편협으로 자국 인민들과 국제사회의 신뢰를 어지간히 잃은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난했을 정도다.

여기에 북한은 현지 경찰서 습격 등 무장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중국의 ‘아킬레스건’ 신장위구르에 무기를 보내는 쇼까지 벌인 것이다. 중국이 항의하면 “당신들까지 유엔 제재에 가담하니 앉아서 굶어 죽을 판이라 우리도 눈에 뵈는 게 없다”고 주장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도 북한의 이런 속셈을 알기 때문에 북한의 무기 밀매 사건은 어느 언론에도 보도되지 않고 조용히 넘어갔다. 북한 정부에 항의하지도 않았다. 이듬해 3월 김정은이 방중해 시 주석을 만나며 양국 관계는 당시 남북 관계처럼 급격히 화해 무드로 반전했다.

무기 밀매 사건은 북한이 중국을 실질적으로 협박한 사례다. 우리는 북-중 관계 악화를 언론의 비난 정도만 보고 짐작하지만, 실제 물밑에선 벼랑 끝 전술까지 동원된다. 그렇다고 중국이 북한에 보복할 처지도 못 된다. 시 주석은 지난주 항미원조 전쟁 70주년 승리를 운운하며 전쟁에서 19만7000명이 죽었다고 말했다. 그 수많은 목숨을 바쳐 안하무인 깡패 이웃을 만들었으니 중국도 속으론 많이 억울할 듯하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