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리포트]‘비대면 취업준비’ 혼자 공부하는 그들, 혼자가 아니었다
유치원 교사 임용고시를 준비 중인 안지혜 씨가 자택에서 동영상 촬영 카메라를 켜놓은 채 시험공부를 하고 있다. 자신이 공부하는 모습을 유튜브로 실시간 방송하기 위해서다. 작은 사진은 캠스터디(카메라와 스터디의 합성어)에 참여하고 있는 김지윤 씨의 책상 위에 놓인 노트북 컴퓨터. 안지혜·김지윤 씨 제공
○ ‘#studywithme(같이 공부해요)’
안 씨는 ‘하늘선새미’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이른바 ‘공부 유튜버’다. 올 1월부터 평일엔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자신이 공부하는 모습을 유튜브를 통해 실시간 방송했다. 임용고시가 한 달 남짓 앞으로 다가온 이달부터는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공부하는 모습을 생중계했다. 10개월간 총 250여 개의 공부 영상을 실시간으로 유튜브 채널에 올렸다.
안 씨가 공부하는 영상을 올리기 시작한 1월에만 해도 시청자 수는 일주일에 많아야 250명 정도였다. 그러다 국내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되면서 시청자 수가 많이 늘었다. 대구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코로나19 1차 대유행이 시작된 3월엔 주간 시청자 수가 2600명까지 증가했다.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오프라인 스터디’ 등이 어려워진 취준생이 몰렸기 때문이다. 4월엔 주간 시청자가 3100명으로 늘었다. 이후 2000명대를 유지하던 주간 시청자 수는 수도권에서 사회적 거리 두기가 2.5단계로 강화된 9월 4500명까지 찍었다.
취준생들이 안 씨가 공부하는 모습을 보는 건 그냥 시청만 하기 위한 게 아니다. 영상을 틀어놓고 자신들도 함께 공부하기 위해 안 씨의 유튜브 채널을 찾는 것이다. 취준생인 20대 남성 박모 씨는 “혼자 자기소개서를 쓰거나 취업 공부를 하면 집중력이 잘 오르지 않는데 다른 사람이 공부하는 영상을 보면 나도 자극을 받아 공부가 더 잘된다”고 했다. 박 씨는 또 “내가 취업 준비를 하고 있는 시간에 다른 누군가도 나처럼 취업을 위해 공부하는 모습을 보게 되면 일종의 연대감도 느껴져 좋다”고 말했다.
○ 줌 활용한 ‘캠스터디’도 활발
자신이 공부하는 모습을 온라인으로 방송하거나 녹화 영상을 유튜브 등에 올리는 사람들은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도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도서관이나 카페 등에서 공부하거나 오프라인 그룹 스터디를 하기가 힘들어지면서 안 씨 같은 ‘공부 유튜버’가 많아졌다. 안 씨는 “국내에서 코로나19 2차 유행이 번진 8월 이후 집에서 혼자 공부하며 영상을 보게 됐다는 댓글이 많이 달렸다”며 “평소 카페에서 공부하던 ‘카공족’들이 집에서 혼자 공부를 할 때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고 싶은 것 같다”고 했다.
유튜브 미국 본사는 최근 문화와 트렌드에 관한 분석을 내놓는 웹사이트 ‘컬처앤드트렌드’를 통해 “공부 장면을 중계하거나 녹화해 보여주는 영상은 다른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콘텐츠”라며 “2019년까지 비슷한 영상들이 2억 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에서도 ‘공부 방송’ 콘텐츠를 찍는 유튜버들이 활동하고 있다”며 국내 상황을 언급하기도 했다. 유튜브 관계자는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사회적 거리 두기가 지속되면서 일상적인 유대감을 나누는 ‘함께해요’ 콘텐츠가 더욱 주목받았다”며 “‘함께 공부해요’ 유튜브처럼 긍정적인 동기부여를 하는 트렌드도 눈에 띄는 추세”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화상회의 애플리케이션(앱)을 이용한 ‘비대면 스터디’에 참여하는 취준생도 많다. ‘줌’ 같은 화상회의 앱을 통해 자기소개서를 서로 첨삭해 주거나 모의면접을 하는 식이다. 화상회의 앱을 켜둔 채 자신이 공부하는 모습을 찍어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이른바 ‘캠스터디’(카메라+스터디)도 있다. 스스로 정한 공부시간을 지킬 수 있고,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에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어 좋다는 게 취준생들의 얘기다.
서울에 거주하는 취준생 김모 씨(32)는 8월 말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코로나19 2차 유행으로 다니던 도서관이 문을 닫자 캠스터디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김 씨를 포함한 취준생 4명이 하루 6시간 함께 공부하는 모임이었다. 김 씨는 “같이 캠스터디를 하는 사람들끼리는 누가 딴짓을 하면 서로 주의를 주기도 하고, 열심히 해서 다 같이 취업에 성공하자는 응원의 말도 나눠 가면서 공부해 심리적으로 도움이 많이 된다”고 했다.
최근엔 관리자 한 명이 화면에 비친 취준생들을 모니터링하는 유료 캠스터디도 생겼다. 이른바 온라인상의 ‘관리형 독서실’인 셈이다. 공부 시간과 쉬는 시간을 정하고 공부 시간에 자리를 비우거나 딴짓을 하는 스터디 참가자가 있으면 관리자가 채팅이나 전화로 주의를 주는 식이다. 캠스터디가 유행하며 여러 형태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구인구직 매칭플랫폼 ‘사람인’이 6월 구직자 262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응답자 10명 중 4명은 비대면으로 취업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구직자들은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아서” “코로나19 감염을 예방할 수 있어서” “오프라인 대비 비용을 절감할 수 있어서” 등의 이유를 대며 비대면 취업 준비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 ‘언택트’ 공부 동료는 마라톤의 ‘페이스메이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올 상반기 20대 9만2130명이 우울증 진료를 위해 병원을 찾았다. 지난해 전체의 80% 가까운 수치로 전년 대비 증가율이 전체 연령대 중 가장 높았다. 취준생들은 대면 스터디 등 오프라인에서 만날 기회가 줄어든 것도 우울감을 키우는 이유 중 하나라고 말한다. 박유승 씨는 “친한 친구들 중에는 먼저 취업한 직장인이 많고 코로나19 때문에 나와 사정이 비슷한 취준생을 만나기도 쉽지 않았다”며 “혼자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려니 외로웠다”고 말했다. 비대면으로 공부하는 모습을 공유하고 소통하며 ‘코로나 블루’를 이겨낼 수 있었다는 취준생도 있다. 지난달부터 캠스터디에 참여하고 있는 김지윤 씨(25)는 “집에서 혼자 공부하면 효율이 떨어지는데 감염이 걱정돼 밖에 나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며 “이 때문에 큰 우울감에 빠졌었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김 씨는 캠스터디에 참여하면서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캠스터디를 함께하는 다른 취준생들은 마라톤에서의 ‘페이스메이커’와 같다”며 “혼자 달리는 게 아니라 함께 달리는 느낌이 생생하게 들어 외로움과 우울함을 느낄 새가 없다”고 말했다.
대학 졸업 후 2년간 취업 준비 중인 최모 씨(27)도 길어지는 취업 준비 기간에 코로나19까지 겹치며 상반기 내내 우울하고 무기력했다고 한다. 최 씨는 “우울감에 한동안 집에서 잠만 잤는데 캠스터디에 참여하며 사람들을 따라 공부하다 보니 무너진 생활 리듬을 조금씩 되찾을 수 있었다”고 했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코로나19 확산과 사회적 거리 두기로 사람들과 대면관계 맺기가 어려워지자 커뮤니케이션의 패러다임 자체가 변한 것”이라며 “스마트 기기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이 비대면 소통을 주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송혜미 기자 1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