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하늘 별자리를 지상에 옮긴 천문(天文)도시(中) -한양도성 창의문에 새겨진 봉황의 메시지 -은평구 역촌동에 있던 임금의 이궁 -불광천 복구로 은평구 크게 발전 가능성
천상 자미원의 천주(하늘기둥) 별자리에 해당하는 창의문(장의문). 서울 4소문중 하나로 북소문으로 불리기도 한다.
장의문은 하늘 별자리의 기운과 연결되는 천문(天文) 지점이기도 하다. 조선 초기의 지관 문맹검은 장의문을 하늘의 천주성(天柱星·하늘기둥이라는 뜻을 가진 별자리) 기운이 있는 곳이라면서 “사람들이 밟고 다니는 것이 마땅하지 않으니 평소에 (장의문을) 닫고 보전해야 한다”고 상소를 올릴 정도였다. 천주성은 △낮과 밤의 운행 및 오행(五行)의 순환 법칙을 주관하고 △정치와 교육을 바로 세우고 △임금의 정령(政令)을 반포하는 일을 담당한다. 그러니 천주성의 기운이 있는 장의문(창의문)을 다른 한양도성 문처럼 ‘대우’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태종의 어가를 따라서 찾아가본 장의문은 ‘하늘의 기둥’에 걸맞게 공중에서 내려오는 천기(天氣) 에너지가 현재도 흘러넘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장의문 천정에 새겨진 2마리의 봉황 그림 역시 천주성을 상징하는 듯했다. 예로부터 봉황은 하늘의 신령한 새로서 하늘임금의 명령을 우주에 전달하는 사명을 맡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태종과 세종이 태미원을 찾다
태종 일행은 장의문을 통과한 뒤 세검정 쪽으로 북상했다. 이 길로 계속 올라가면 평양-의주를 거쳐 중국 땅으로 갈 수 있다. 태종이 도착한 곳은 경복궁에서 도보로 1시간40분 남짓한 거리의 영서역. 나중에 연서역으로 불린 이곳은 지금의 서울 은평구 역촌동, 대조동 일대다. 태종은 이곳에서 세자와 이별했다. 태종이 “길이 험하고 머니, 마땅히 자애(自愛)하여야 하느니라”라고 말하자, 세자는 울면서 하직인사를 했다. 오로지 중국 황제의 눈에 들기 위해 아끼는 아들을 보내야만 하는 태종 또한 눈물을 흘렸다. 태미원 별자리 천문도와 삼원(자미원 태미원 천시원) 천문도. 그래픽=강동영 기자
연서역은 하늘에서는 태미원으로 불리는 영역이다. 즉 하늘의 태미원 기운이 지상으로 하강한 곳이 연서역 일대라는 것이다. 천문도에서 자미원은 하늘 임금이 생활하는 주거지이고, 태미원은 임금이 제후와 대신 등 정부 관료들과 정사를 논의하는 정부종합청사에 해당한다. 이 때문에 자미원에 오제좌(五帝坐)가 있고, 태미원에도 같은 이름의 ‘오제’가 있다. 두 영역에 임금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한 임금이 필요에 따라 자리를 옮겨 다니는 것으로 보면 된다.
이는 지상에서도 같다. 조선 지관 문맹검은 태미원인 연서역은 이궁(離宮·임금이 나들이 때에 머무는 별궁)이 세워지는 곳이자, 임금이 수시로 백성들이 농사짓는 것을 살펴보는 민정 시찰 장소라고 했다. 즉 연서역을 태미원의 오제 별자리로 본 것이다.
실제로 조선시대에 연서역은 중앙 정부와 지방간 공문서 전달 장소이자 관리들을 위한 말과 숙박시설을 제공하는 장소였다. 조선과 중국을 오가는 사신들을 접대하는 공간으로 활용되기도 해 규모가 크고 화려했다. 그만큼 임금이 잠시 머물기에도 적합했다. 역사 기록에서도 태종과 세종이 민정 시찰차 수시로 연서역을 방문한 사실이 확인된다. 특히 조선왕조실록에는 세종 임금이 민정 시찰차 나와 연서역 인근의 들에서 밀과 보리가 무성하게 자라는 것을 보고 매우 기뻐했다는 기록도 있다.
● 불광천의 ‘불광’이 살아나다
조선시대의 역참인 연서역이 있었던 곳임을 알려주는 ‘연서역터’ 표지석. 길가에 버려져 있다시피 세워져 있다.
조선 16대 임금 인조가 반정으로 왕위에 오르기 전 머물렀던 별서(별장)을 기념하고자 세운 ‘인조별서유기비.’(보물 제1462호)
연서역터
도시 발전사로 보면 태미원 핵심자리인 은평구 구도심은 개발이 정체돼 아직도 옛 도시 같은 느낌이 강하다. 교통, 교육, 생활편의시설 등 환경이 강남지역이나 ‘마용성’(마포 ·용산·성동구) 지역에 비해 다소 뒤처진다. 다만 은평구의 미래는 밝다. 북한산에서 발원해 불광동, 역촌동, 응암동 등을 거쳐 한강으로 빠져나가는 불광천이 큰 역할을 할 것이다. 길이 9.21km의 불광천은 비가 와야만 물이 흐르는 건천으로, 예전에는 주변에서 버린 쓰레기와 오물 등으로 악취가 가득했다. 하지만 지금은 민물가마우지가 날아들 정도로 깨끗한 자연하천으로 변신했다. 2002년 서울시가 상암 경기장에서 열리는 한일월드컵 대회를 앞두고 오수방지시설을 설치하고, 지하수를 끌어올려 사시사철 물이 흐르는 생태하천으로 복원했기 때문이다.
생태하천으로 복원된 불광천. 북한산 자락에서 발원한 불광천은 은평구의 불광동 역촌동 증산동 등을 거쳐 한강으로 빠져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