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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정부종합청사’가 자리한 서울 은평구[안영배의 도시와 풍수]

입력 | 2020-11-01 07:26:00

서울, 하늘 별자리를 지상에 옮긴 천문(天文)도시(中)
-한양도성 창의문에 새겨진 봉황의 메시지
-은평구 역촌동에 있던 임금의 이궁
-불광천 복구로 은평구 크게 발전 가능성





천상 자미원의 천주(하늘기둥) 별자리에 해당하는 창의문(장의문). 서울 4소문중 하나로 북소문으로 불리기도 한다.

1407년 9월 25일, 조선 3대 임금 태종은 명나라 황제에게 정월 초하루 하례(賀禮)를 위해 한양을 떠나는 세자(양녕대군)를 배웅했다. 어가를 타고 경복궁을 나선 태종은 세자와 함께 장의문 앞에 도착한다. 장의문은 경복궁의 뒷산인 북악산에서 인왕산으로 이어지는 고갯길에 세워진 성문으로, 조선의 수도 한양을 지키는 서북쪽 관문이다. 한양도성의 4소문 중 하나로 북소문, 창의문, 자하문 등 여러 이름을 갖고 있다.

장의문은 하늘 별자리의 기운과 연결되는 천문(天文) 지점이기도 하다. 조선 초기의 지관 문맹검은 장의문을 하늘의 천주성(天柱星·하늘기둥이라는 뜻을 가진 별자리) 기운이 있는 곳이라면서 “사람들이 밟고 다니는 것이 마땅하지 않으니 평소에 (장의문을) 닫고 보전해야 한다”고 상소를 올릴 정도였다. 천주성은 △낮과 밤의 운행 및 오행(五行)의 순환 법칙을 주관하고 △정치와 교육을 바로 세우고 △임금의 정령(政令)을 반포하는 일을 담당한다. 그러니 천주성의 기운이 있는 장의문(창의문)을 다른 한양도성 문처럼 ‘대우’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태종의 어가를 따라서 찾아가본 장의문은 ‘하늘의 기둥’에 걸맞게 공중에서 내려오는 천기(天氣) 에너지가 현재도 흘러넘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장의문 천정에 새겨진 2마리의 봉황 그림 역시 천주성을 상징하는 듯했다. 예로부터 봉황은 하늘의 신령한 새로서 하늘임금의 명령을 우주에 전달하는 사명을 맡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태종과 세종이 태미원을 찾다
태종 일행은 장의문을 통과한 뒤 세검정 쪽으로 북상했다. 이 길로 계속 올라가면 평양-의주를 거쳐 중국 땅으로 갈 수 있다. 태종이 도착한 곳은 경복궁에서 도보로 1시간40분 남짓한 거리의 영서역. 나중에 연서역으로 불린 이곳은 지금의 서울 은평구 역촌동, 대조동 일대다. 태종은 이곳에서 세자와 이별했다. 태종이 “길이 험하고 머니, 마땅히 자애(自愛)하여야 하느니라”라고 말하자, 세자는 울면서 하직인사를 했다. 오로지 중국 황제의 눈에 들기 위해 아끼는 아들을 보내야만 하는 태종 또한 눈물을 흘렸다.

태미원 별자리 천문도와 삼원(자미원 태미원 천시원) 천문도. 그래픽=강동영 기자

태종이 천주성(장의문)을 통과해 새로운 장소를 찾은 것은 별자리 세계로 보면 다른 천문 공간 영역으로 들어서는 일에 해당한다. 조선시대 별자리를 그린 천문도(천상열차분야지도)를 보면 천주성은 임금이 사는 자미원(紫薇垣) 영역에 속한 별자리 중 하나로, 15개의 별이 울타리처럼 펼쳐진 자미원 담장 바로 안쪽에 바짝 붙어 있다. 따라서 천주성을 벗어나는 것은 자미원 담장 너머로 나가는 행위나 마찬가지였다.

연서역은 하늘에서는 태미원으로 불리는 영역이다. 즉 하늘의 태미원 기운이 지상으로 하강한 곳이 연서역 일대라는 것이다. 천문도에서 자미원은 하늘 임금이 생활하는 주거지이고, 태미원은 임금이 제후와 대신 등 정부 관료들과 정사를 논의하는 정부종합청사에 해당한다. 이 때문에 자미원에 오제좌(五帝坐)가 있고, 태미원에도 같은 이름의 ‘오제’가 있다. 두 영역에 임금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한 임금이 필요에 따라 자리를 옮겨 다니는 것으로 보면 된다.

이는 지상에서도 같다. 조선 지관 문맹검은 태미원인 연서역은 이궁(離宮·임금이 나들이 때에 머무는 별궁)이 세워지는 곳이자, 임금이 수시로 백성들이 농사짓는 것을 살펴보는 민정 시찰 장소라고 했다. 즉 연서역을 태미원의 오제 별자리로 본 것이다.

실제로 조선시대에 연서역은 중앙 정부와 지방간 공문서 전달 장소이자 관리들을 위한 말과 숙박시설을 제공하는 장소였다. 조선과 중국을 오가는 사신들을 접대하는 공간으로 활용되기도 해 규모가 크고 화려했다. 그만큼 임금이 잠시 머물기에도 적합했다. 역사 기록에서도 태종과 세종이 민정 시찰차 수시로 연서역을 방문한 사실이 확인된다. 특히 조선왕조실록에는 세종 임금이 민정 시찰차 나와 연서역 인근의 들에서 밀과 보리가 무성하게 자라는 것을 보고 매우 기뻐했다는 기록도 있다.


● 불광천의 ‘불광’이 살아나다

조선시대의 역참인 연서역이 있었던 곳임을 알려주는 ‘연서역터’ 표지석. 길가에 버려져 있다시피 세워져 있다.

현재 태미원의 오제 별자리인 연서역은 온데간데없다. 은평구 역촌역 교차로에서 북서쪽 서오릉으로 가는 길(서오릉로)가에 세워진 ‘연서역 터’(은평구 서오릉로 118-1)라는 표지석만이 남아 있다. 옹기종기 들어선 주택들과 중소규모 빌딩 등이 즐비한 이곳이 서울 서북쪽 교통의 요지였음을 알아보긴 힘들다. 다만 동네 이름인 ‘역촌(驛村)’에서 역사(驛舍)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 살았음을 알 수 있다. 인근의 ‘인조별서유기비’의 글에서 인조가 쿠데타로 집권하기 이전에 살았던 별서(별장)가 연서역촌 뒤쪽에 자리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연서역 일대가 임진왜란을 거친 조선 중기까지도 여전히 중요한 거점지역이었음을 시사한다.

조선 16대 임금 인조가 반정으로 왕위에 오르기 전 머물렀던 별서(별장)을 기념하고자 세운 ‘인조별서유기비.’(보물 제1462호)

은평구 지형도를 보면 흥미로운 점도 발견된다. 연서역 터 표지석 일대가 은평구의 가장 중심점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을 중심으로 남쪽을 제외한 동·서·북쪽 삼면이 모두 산으로 에워싸고 있는 형태다. 이는 태미원 영역임을 알리는 태미원 담장 별자리와 아주 유사한 모습이다. 북한산 족두리봉에서 백련산으로 이어지는 산세는 태미원의 오른쪽 담장 별자리로, 서오릉의 봉산 줄기가 마포구 상암동의 매봉산까지 이어지는 산세는 태미원의 왼쪽 담장 별자리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북쪽이 막혀 있는 모습도 비슷하다.

연서역터

천문도에서 태미원은 자미원에 비해 영토가 다소 좁고 위치가 치우쳐 보이지만, 하늘나라를 시작하는 건국의 단계라고 해서 ‘상원’이라고 부른다. 나라를 일으킬 때는 무력과 공권력을 통해 기틀을 잡아나가는 게 중요하므로, 태미원에는 무(武)와 법(法)을 상징하는 이름의 별들이 많다. 이는 ‘중원’인 자미원이나 ‘하원’인 천시원과는 뚜렷이 구별되는 특징이다. 이런 점에서 태미원 자리인 은평구는 군과 사법 질서를 담당하는 공공기관들과 궁합이 맞는다고 할 수 있다. 은평구의 터 기운이 그만큼 강하다는 뜻이다.

도시 발전사로 보면 태미원 핵심자리인 은평구 구도심은 개발이 정체돼 아직도 옛 도시 같은 느낌이 강하다. 교통, 교육, 생활편의시설 등 환경이 강남지역이나 ‘마용성’(마포 ·용산·성동구) 지역에 비해 다소 뒤처진다. 다만 은평구의 미래는 밝다. 북한산에서 발원해 불광동, 역촌동, 응암동 등을 거쳐 한강으로 빠져나가는 불광천이 큰 역할을 할 것이다. 길이 9.21km의 불광천은 비가 와야만 물이 흐르는 건천으로, 예전에는 주변에서 버린 쓰레기와 오물 등으로 악취가 가득했다. 하지만 지금은 민물가마우지가 날아들 정도로 깨끗한 자연하천으로 변신했다. 2002년 서울시가 상암 경기장에서 열리는 한일월드컵 대회를 앞두고 오수방지시설을 설치하고, 지하수를 끌어올려 사시사철 물이 흐르는 생태하천으로 복원했기 때문이다.

생태하천으로 복원된 불광천. 북한산 자락에서 발원한 불광천은 은평구의 불광동 역촌동 증산동 등을 거쳐 한강으로 빠져나간다.

실제로 은평 지역은 불광천 복원사업 이전과 이후가 확연하게 다르다. 터의 기운이 확연히 되살아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도시가 불광천의 이름인 ‘불광(佛光)’처럼 빛이 나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도시개발 전문가들은 은평구 구도심은 GTX-A 노선인 연신내역이 들어서고, 명품 신도시인 은평뉴타운과 수색증산뉴타운과 연계되면 크게 발전할 것으로 내다본다. 청계천이 서울시내 도심을 보다 화려하게 만들어주었듯 불광천이 은평구의 미래를 밝혀줄 것이라는 얘기다. 상류의 복개 구간마저 자연하천으로 복원된다면 이런 미래 전망을 더욱 밝게 해주는 금상첨화이자 화룡점정이 될 것이다.

안영배 논설위원oj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