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대 전 검찰총장(왼쪽)과 최재경 전 중앙수사부장2012.11.30/뉴스1
추미애 법무부장관의 인사권과 수사지휘권, 감찰권에 반발하며 평검사들의 성토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법조계에서는 이번주가 이번 사태가 ‘검란(檢亂)’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단순 반발 사태로 끝날지를 가르는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지난주 대전 검찰청을 방문하며 본격적인 외부 행보에 나선 윤석열 검찰총장이 이번주 신임 부장검사를 상대로 강연을 하고 향후 지방청 순시 일정을 확대해 일선 검사들과의 접촉을 늘리며 ‘내부 다지기’에 주력하는 모습이라 이번 사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주목된다.
추 장관에 대한 평검사들의 반발은 이환우 제주지검 검사(43·사법연수원 39기)의 글부터 시작됐다. 이 검사는 지난달 28일 오전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검찰개혁은 실패했다’는 제목의 글에서 현 정부의 검찰개혁이 근본적으로 실패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이에 최재만 춘천지검 검사(47·36기)가 같은날 “이 검사와 동일하게 ‘현재와 같이 의도를 가지고 정치가 검찰을 덮어버리는 상황은 우리 사법역사에 나쁜 선례를 남긴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하므로 저 역시 커밍아웃하겠다”고 추 장관에 반발하는 글을 올렸다.
이 글에는 “나도 커밍아웃하겠다”는 등 지지댓글이 이어지며 지난 금요일인 30일까지 230여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중복 댓글을 감안해도 전체 검사 수가 2000여명이라는 점에서 상당수의 검사들이 추 장관의 행태에 반기를 든 셈이다.
주요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내던 검사들 뿐만 아니라 일선 형사부 검사들까지도 댓글을 단 것으로 전해졌다. 형사부 강화를 내세운 추 장관 입장에도 불구하고 형사부 검사들도 반발하고 있는 모양새다.
이에 30일 임은정 대검찰청 감찰정책연구관(부장검사·사법연수원 30기)이 “성난 동료들이 많아 욕 먹을 글인 걸 알지만 종래 우리가 덮었던 사건들에 대한 단죄가 뒤늦게나마 속속 이뤄지고 있는 이때에 자성의 목소리 하나쯤은 남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짧게 쓴다”며 검찰 내부 반발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
검사들의 반발은 문재인 정부가 추진해온 검찰개혁 방향에 의구심을 갖고 있던 검사들이 최근 추 장관의 잇따른 수사지휘권 발동과 윤 총장에 대한 감찰 지시로 쌓여왔던 불만이 터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번 평검사들의 반발이 확산되면 평검사회의 소집 등 검사들이 집단행동에 나서 ‘검란’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또 평검사를 넘어 부장·차장검사 등 중간간부들까지 추 장관 비판 움직임에 동참할 경우 사태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검사들이 월말에는 밀린 결재들 때문에 바뻐서 월말결재가 끝난 이번주에는 참여하는 인원이 더 늘어날 수도 있다”며 “또 중간간부들이 ‘평검사들이 나서고 있는데 우리들이 가만히 있을 수 없다’며 평검사들에 이어 집단 움직임을 보일 가능성도 있어 (검란은) 이번주가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국민들에게 검찰개혁 자체를 반대하는 것처럼 비치면 역풍을 맞을 우려가 있기 때문에 집단행동에 나서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대표적 ‘검란’ 사태는 지난 2012년에 있었다.
당시 대검 감찰본부는 최재경 당시 대검 중수부장에 대한 감찰에 착수한다. ‘검사 비리사건’의 당사자인 김광준 전 부장검사에게 최 중수부장이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언론 취재 대응방안 등을 조언했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이는 표면적 이유이고, 실상은 ‘검사 비리사건’과 ‘성추문 사건’을 겪으면서 한상대 당시 검찰총장의 거취 문제를 놓고 벌어진 검찰총장과 검찰 간부들 사이의 의견대립이 원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총장은 사퇴를 종용한 검찰 간부들의 요구를 무시하고 대검 중수부 폐지 등 내용을 담은 검찰 자체개혁안으로 위기를 돌파하려 했다. 일선 검사들의 평검사회의가 이어졌고 검찰 간부들은 한 총장에게 사퇴를 요구했다. 결국 한 총장은 최 중수부장에 대한 감찰착수 이틀 뒤 사퇴했다.
2012년 이전으로 시간을 돌리면 1999년 심재륜 당시 대구고검장과 남기춘 당시 대구고검 검사가 김태정 당시 검찰총장 등 수뇌부의 동반 퇴진을 요구한 적이 있었다.
심 전 고검장이 대전지검장 시절 이종기 변호사로부터 떡값과 향응을 제공받았다는 이유로 대검 감찰을 받은 것이 이유였다. 그러나 김 총장은 끝까지 자리를 지켰고 이후 법무부 장관까지 영전했다. 그러나 부인이 옷로비 사건에 연루되면서 취임 16일 만에 낙마했다.
한편 윤석열 검찰총장이 일선 검사들과의 접촉을 늘리며 ‘내부 다지기’에 주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윤 총장은 오는 3일 충북 진천에 있는 법무연수원에서 지난 8월 인사에서 부장검사로 승진한 사법연수원 34기 등 신임 부장검사 30여 명을 상대로 한 시간가량 직접 강연을 한다.
윤 총장은 오는 9일 신임 차장검사 교육에도 참석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대검은 통상적 일정이라고 했지만, 최근 들어 일선 검사들과의 접촉 횟수를 늘리고 있는 윤 총장의 행보에 대해 일각에선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 배제와 감찰 지시로 코너에 몰린 윤 총장이 ‘내부 결속 다지기’에 나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앞서 윤 총장은 지난달 29일 대전 서구 대전고검·지검을 방문하며 지방검찰청 순회 일정을 재개했다. 윤 총장은 검찰 구성원들과의 간담회, 만찬에서 “우리는 어쨌든 나라의 녹을 받고 일하는 사람들인데, 너무 의기소침하지 말고 열심히 일하자”는 취지로 격려했다.
반면 일각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미뤄왔던 지방검찰청 방문과, 통상적으로 예정된 강연일정을 내부 결속 다지기로 보기 어렵다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