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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셜록 홈즈와 열애중인 한국

입력 | 2020-11-02 03:00:00

홈즈의 여동생이 주인공 등장… 영화 ‘에놀라 홈즈’ 인기 끌어
대학로선 ‘셜록 홈즈 시즌2’ 시작… “한국 추리 콘텐츠 빈약함 드러내”



영화 ‘에놀라 홈즈’에서 에놀라 홈즈(오른쪽) 역의 밀리 보비 브라운이 기차역에서 두 오빠 셜록(왼쪽), 마이크로프트와 이야기하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셜록 홈즈는 유명한 탐정이자 학자이며 화학자이고, 저의 오빠랍니다.”

앳된 얼굴의 소녀가 이렇게 말하자마자 등 뒤로 세계적인 탐정 ‘셜록 홈즈(홈스)’가 조용히 다가와 인사를 건넨다. 이어 셜록 홈즈는 소녀와 함께 차근차근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이 영화 ‘에놀라 홈즈’는 9월 23일 넷플릭스가 공개한 직후 한국에서 인기 콘텐츠 5위를 차지했다. 한국 시청자들 사이에선 “여동생을 주인공으로 삼아 기존 셜록 홈즈의 서사를 잘 스핀오프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130여 년 전 영국 작가 아서 코넌 도일이 쓴 셜록 홈즈 시리즈의 인기는 여전하다. 지난달에만 한국에서 9권의 셜록 홈즈 시리즈가 번역 출판됐다. 올해 6월 이다해 작가가 코넌 도일의 생가를 방문한 뒤 낸 책 ‘코넌 도일’(아르테)은 추리소설 마니아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있다.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올해 7월 대학로에서는 연극 ‘코믹추리극 셜록 홈즈’ 시즌2가 시작됐다.

이처럼 홈즈가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있는 건 ‘캐릭터’의 매력 덕이다. 명석한 두뇌와 냉철한 판단력으로 대변되는 홈즈가(家)의 인물들이 추리물의 주인공으로 각광받는다. 배우가 캐릭터의 후광을 받기도 한다. BBC 드라마 ‘셜록’의 주연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긴 얼굴로 한국 시청자들에게 ‘오이형’으로 불리며 인기 배우가 됐다.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로 넷플릭스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밀리 보비 브라운이 에놀라 홈즈 역할을 맡은 것도 홈즈 이야기가 흥행을 보증하기 때문이다.

홈즈가 드라마나 영화 같은 서사로만 활용되는 것은 아니다. 셜록 홈즈는 ‘추리의 대명사’이기에 상호로도 쓰인다. 전국에 55개 지점이 있는 국내 최대 프랜차이즈 방탈출 카페 셜록 홈즈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의 권충도 대표는 “회사명으로 여러 이름을 고민했지만 한국 사람들에게 셜록 홈즈보다 직관적인 상호는 없었다”며 “2015년 처음 회사를 설립한 후 급격히 성장한 데에는 이름 덕도 크다”고 했다.

하지만 홈즈의 인기는 한국 추리 콘텐츠의 빈약함을 드러내는 지표라는 지적도 있다. 최근 웹소설과 드라마를 중심으로 장르물이 떠오르고 있지만 아직 추리물을 대표하는 캐릭터와 대표 작가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추리 소설을 쓰는 한 웹소설 작가는 “일본은 만화 캐릭터로 김전일과 코난, 소설 작가로 히가시노 게이고와 미야베 미유키를 키웠다”며 “한국에서 추리물의 입지를 높이기 위해서는 매력적인 주인공과 베스트셀러 작가를 키우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