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양에 성공한 최초의 인간 세포 이름은 헬라(Hela). 헨리에타 랙스의 앞 철자 두 개씩을 따서 지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세포 분열을 이어가고 있는 헬라 세포 덕분에 항암 치료제가 나왔고 시험관 아기가 태어났으며 유전자 지도도 제작됐다. 최초의 소아마비 백신도 헬라 세포 덕분이다. 당시 백신 안전성 검증엔 원숭이 세포가 활용됐는데 비싸고 구하기도 어려웠다. 헬라 세포는 싼값에 수조 개 단위로 생산돼 소아마비 퇴치에 큰 공을 세웠다.
▷미국 하워드 휴스 의학연구소는 최근 대형 연구기관으로는 처음으로 헬라 세포를 사용한 대가로 헨리에타 랙스 재단에 수십만 달러의 기부금을 내기로 했다. 랙스가 사망한 지 70년이 지난 후에야 보상이 이뤄진 배경엔 과학계의 흑역사가 있다. 헬라 세포는 기증자의 동의 없이 채취되고 널리 사용된 첫 사례다. 존스홉킨스대 병원은 치료하고 남은 세포를 배양해 과학자들에게 무상으로 제공했고, 바이오 회사들은 이를 대량 생산해 떼돈을 벌었다. 이를 까맣게 몰랐던 유족은 의료보험이 없어 중병에도 치료를 못 받는 비참한 생활을 이어갔다.
▷지금은 한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신체 조직을 채취하거나 이를 연구 목적으로 활용할 때 개인의 동의를 받도록 한다. 건강검진 자료 수집과 연구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구체적인 규제의 강도는 나라마다 다르고, 과학 발전을 위해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현실론과 생명 윤리는 양보할 수 없다는 원칙론이 팽팽하게 맞선다. 더 건강한 삶의 권리를 누리는 만큼 공익을 위해 어느 선까지 신체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가는 첨예한 논쟁거리다. 살아 있었으면 100세가 됐을 랙스가 타의로 남긴 불멸의 세포는 묵직한 생명과학 윤리 문제를 던진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