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은퇴식을 마치고 가족과 함께한 이동국(뒷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전북 제공
정윤철 스포츠부 기자
은퇴 경기에서 여덟 번째 K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이동국은 K리그 역대 최다골(228골)과 최다 공격포인트(305개) 등 여러 기록을 남겼다. 그러나 화려했던 그의 축구 인생 이면에는 실패에 대한 좌절과 재기에 대한 걱정 속에 밤잠을 설친 날들도 많았다.
2002 한일 월드컵 때는 ‘게으른 천재’라는 평가와 함께 엔트리에서 탈락해 대회 기간 내내 술에 의지하다가 다음 해 군에 입대하기도 했다. 최고 기량을 뽐냈던 2006년에는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십자인대가 끊어졌다. 2007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미들즈브러에 진출했지만 EPL 무득점에 그치고 국내로 돌아오는 수모를 겪었다.
이동국에게 최강희 전 전북 감독(현 상하이 선화 감독)은 잊지 못할 은인이다. 2009년 당시 최악의 슬럼프에 빠진 이동국을 영입한 최 감독은 “네가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 이상 계속 경기를 뛰게 하겠다”며 자신감을 불어넣어 줬다. 사령탑의 강한 믿음 속에 득점력이 살아난 이동국은 최 감독과 함께 ‘전북 왕조’(K리그 우승 6회)를 만들어 냈다. 이동국은 “최 감독님 덕분에 쓸쓸한 은퇴를 피할 수 있었다. 내 안에 있던 잠재력을 끄집어 낸 분”이라고 말했다.
이동국의 해피엔딩은 혼자 힘으로는 어려웠다. 흔들리고 쓰러질 때마다 손을 잡아준 고마운 존재가 있었기에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유니폼을 벗은 그 앞에는 지도자, 방송인 등 여러 선택지가 놓여 있다. 어떤 길을 가든 누군가의 걱정을 덜어주고 희망을 보태는 존재가 된다면 인생의 후반전이 더욱 빛날 것 같다.
정윤철 스포츠부 기자 trigg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