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일자리 잃은 예술인들
이른 아침 빵집에 출근한 김한 씨가 빵이 담긴 트레이를 트럭에 싣고 있다(왼쪽 사진). 최근 방역업체에 취직한 김주왕 씨가 방호복을 입고 사무실 스위치를 닦고 있다. 이지윤 인턴기자 연세대 생활디자인학과 4학년·김주왕 씨 제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로 극장, 공연장, 무대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그나마 생긴 일자리도 갑자기 없어지기 일쑤다. 지난달 26일 제작사 대표가 잠적해 일찍 막을 내린 한 연극은 황폐화된 예술계 현실을 잘 보여준다. 이 현실은 무명의 예술인들에게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싸움이다. 무력감이 밀려오지만 예술을 위해서라면 버텨야 한다.
코로나19로 본래 일터를 떠나 생계 전선에 뛰어든 배우, 인디밴드, 스태프 등 8명을 만났다. 볼멘소리를 꺼내기도 이들은 조심스러워 했다. “저희만 힘든가요. 예술인의 숙명인가 봅니다.”
○연극배우의 ‘코로나 하루’
오전 7시 40분, 빵집에 도착하자 하얀 근무복으로 갈아입은 그가 빵을 진열하고 포장한다. 첫 손님이 들어오자 힘차게 “어서 오세요!” 외친다. 배우 활동이 아예 끊긴 건 아니다. 오디션이 가뭄에 콩 나듯 열린다. “다행히 강릉에서 촬영하는 영화 단역을 맡아서 다음 주엔 오전 4시쯤 일어나야 할 것 같다”며 엷게 미소 지었다. 최근엔 충남 천안에서 마당극 공연도 했다.
오전 10시, 빵집 건물 6층 빵 공장에서 인천에 배송할 빵을 받아 트럭에 옮겨 싣는다. 매일 경기 화성과 인천을 오가며 다른 매장에 배달한다. 일이 많은 때는 서울, 화성, 인천, 천안을 오가느라 일주일에 2000km를 달린다. “연기할 자리가 생기면 사장님께 양해를 구해 일정을 조율하는 게 더 힘들죠. 마당극도 사장님이 배려해 주신 덕분입니다.”
오전 11시를 넘겨 인천 남동구의 한 매장에 빵을 내려놓고 2차 배송이 예정된 화성으로 향한다. 끼니를 챙길 시간도 마땅치 않다. 2차 배송이 끝나면 서울에 가서 저녁 알바를 해야 한다. 그는 “예측조차 할 수 없는 공연계의 미래 때문에 더 힘들다”고 했다. 랜선 공연이 늘면서 배우로서의 정체성도 고민이다. “10년 후에도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요?”
오후 5시, 두 번째 직장으로 출근한다. 한 달 전부터 서울문화재단의 예술인 공공지원사업에 뽑혀 극장에서 일한다. 하루 8시간 언제 재가동할지 모르는 무대와 극장을 정비한다. 일을 마치고 침대에 누우면 다음 날 오전 1시.
○“돈을 바라면 못 한다는 일이지만, 그래도…”
생활고는 늘 함께였다. “돈을 바라면 예술을 오래 못 한다”는 말에 수긍해 왔지만 올해는 뼈아프다. 인디밴드 트레봉봉의 드러머 김하늘은 “경제적 어려움은 몸에 익었다. 관객을 못 만나는 상황이 더 힘들다”고 했다.
“꿈 하나로 여기까지 왔다”는 7년 차 뮤지컬 배우 김주왕 씨(34)도 고됨의 연속이다. 해외 할리우드 연예인 대상의 운동 수업도 병행했지만 일이 끊기자 스크린골프장 아르바이트를 했다. 스크린골프장 손님이 줄어 해고된 뒤 동창에게 부탁해 지금은 방역업체에서 일한다. 산업용 마스크에 방호복 차림으로 공연장 사무실 헬스장에 소독약을 뿌린다. 퇴근 후엔 뮤지컬 넘버 커버곡 유튜브 영상을 만든다. 예술을 이어가는 유일한 방법이다.
무대가 간혹 열리면 무대에 굶주린 이들이 모여든다. 올 9월 온라인 ‘인천 펜타포트 음악축제’에 설 수 있는 ‘펜타 유스스타’ 경연에 299개 밴드가 몰렸다. 1, 2등만 무대에 설 수 있어 경쟁률은 150 대 1이었다. 지난해 경쟁률은 20 대 1 수준이었다. 트레봉봉 리더 성기완(53)은 “3등을 해서 기회는 놓쳤지만 뮤지션들의 절박함을 느꼈다”고 했다.
공연이 끊기면서 장기간 방치된 음향장비함에 거미줄이 쳐져 있다. 김병주 음향감독 제공
이지윤 인턴기자 연세대 UIC 경제학과 졸업
이지윤 인턴기자 연세대 생활디자인과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