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조직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일이 안 풀릴 때가 있다. 커리어의 위기라고 느껴지는 시기가 찾아오고, 길을 잃은 것처럼 느끼기도 한다. 개인적인 일로 직장 일에 집중하기 힘들 때가 있기도 하다. 시기만 다를 뿐 누구나 그럴 때가 있다.
직장 생활 10년이 되어갈 때 너무 바쁘게 살면서, 회사와 고객을 위해 많은 고민을 하면서도 내 삶을 위한 고민을 할 시간은 많지 않았다. 그런 고민 끝에 내가 내렸던 결정은 회사를 나와 나름의 방황을 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었다. 익숙한 공간을 떠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혼자 생각하는 시간을 늘리며 남은 삶을 어떻게 지낼지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몸이 아플 때 휴직하는 것을 우리 모두 이해하듯, 마음이 힘들 때 때론 휴직이나 퇴직을 하고 방황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그 시간을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몸이 아파 휴직을 한 뒤 치료를 제대로 받지 않는 것이 문제인 것처럼, 마음이 힘들어 직장을 잠시 떠나게 될 경우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돌보지 않는 것 역시 문제일 수 있다. 돌보는 방법은 실제 적극적인 치료나 상담을 받는 것이 될 수도 있고, 자신이 평소 해보고 싶었지만 하지 못하던 것을 하면서 자기의 마음을 돌아보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어떤 직장인은 ‘안전한 길’만을 찾아 직장 생활을 하다가 은퇴하기도 한다. 그것이 자신이 의도하고 선택한 것이라면 문제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은퇴를 했을 때, 나는 무엇을 위해 일을 해왔던 것인지 회의가 들고, 남이 만들어준 길에서만 열심히 일해 오다 보니 은퇴 후 자신이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게 되지는 않을지 생각해 보자.
새로운 길을 찾고 싶다면 ‘자발적’ 방황은 필수이다. 자기만의 길은 지도를 새롭게 그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을 통해 자기가 원하는 것이 정말 무엇인지를 알아내야 한다. 주변 사람들이 좋은 길이라고 하는, 그래서 대부분 따르는 길이 아닌 자신만의 길이 무엇인지, 자기 삶만의 색깔이 무엇인지 찾아내는 것이다. 오랜 직장 생활 동안 많은 직장인들은 자기만의 색깔을 잃거나 무엇인지 모른 채 바쁘게 살아간다. 그리고 은퇴 후 ‘원치 않은’ 방황을 시작한다.
임원으로 승진하는 것이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일까? 누구에게는 임원이 되는 과정이 자신의 색깔을 찾는 과정일 수 있지만, 또 다른 경우 임원이 되면서 더욱 자신의 색깔을 잃을 수도 있다. ‘부부가 둘 다 놀고 있는’ 편성준 작가가 누군가에게는 ‘답이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나는 그가 ‘새로운 답’을 찾고 있다고 느꼈다.
앞서 말한 영화에서 바이올렛과 핀치는 길거리 벽에서 ‘죽기 전에…(Before I die)’라는 문구가 반복되어 적혀 있고, 그 다음 칸이 비어 있는 것을 본다. 나는 그 뒤에 무엇을 쓰고 싶을까? 그 답을 너무 늦지 않게 찾길 바란다.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조직 커뮤니케이션 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