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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주쿠보다 신오쿠보”… 코로나19-한류로 희비 엇갈린 日 핫플레이스

입력 | 2020-11-05 03:00:00

[글로벌 현장을 가다]
젊은 층 즐겨 찾는 신오쿠보 북적… 단순 한인타운 넘어 종합상권 도약
하라주쿠는 관광객 감소 직격탄
“하라주쿠 분발해야” 日서 비교 분석




코로나19 사태 이후 방문객이 급증해 하라주쿠를 압도하기 시작한 도쿄의 한인 밀집지역 신오쿠보는 단순한 한류 중심지를 넘어 일본 유행의 중심지로 거듭나고 있다. 지난달 24일 오후에도 젊은 층이 몰리며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도쿄=김범석 특파원 bsism@donga.com

김범석 도쿄 특파원

지난달 24일 일본 도쿄의 한인 밀집지역인 신주쿠구 신오쿠보에서 젊은 일본 여성 3명을 만났다. 유명 삼겹살 전문점을 찾은 직장인 이가라시 가나(五十嵐かな·24) 씨, 모두 학생인 다치키 이토네(立木緖音·20) 씨와 가와무라 사야카(川村淸花·19) 씨는 나이, 직업, 연고지가 달랐지만 신주쿠의 K팝 댄스학원에서 만나 함께 춤을 추면서 돈독한 사이가 됐다. 세 사람 뒤에 자리한 대형 화면에는 방탄소년단의 뮤직비디오가 나오고 있었다.

최근 이들의 관심은 한국 요리로 확장됐다. 이가라시 씨는 “회사에서도 한국 요리를 연구하는 친목 모임에 가입했다. 동료들과 치즈닭갈비, 산낙지 등을 먹으러 종종 신오쿠보에 온다”고 말했다. 다치키 씨는 “소셜미디어로 늘 신오쿠보에 새로 생긴 한국 요리 전문점을 검색한다”고 가세했다.

세 사람은 입을 모아 “매주 한 번 이상 신오쿠보를 방문한다”고 했다. 가와무라 씨는 “이전에는 일본 젊은 층이 즐겨 찾는 시부야구 하라주쿠를 자주 갔다. 최근 주변에 한국 문화를 좋아하는 친구가 많아져 자연스레 약속 장소도 신오쿠보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 한류 중심지 신오쿠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하라주쿠, 신주쿠 등 도쿄의 유명 상권은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정부가 긴급사태를 발령하고 곳곳에서 확진자가 속출했던 올해 4, 5월에는 일일 매출이 이전의 10%에 불과한 곳도 많았다. 하반기 들어 정부가 국내 여행을 장려하는 ‘고투트래블’ 캠페인을 적극 추진하면서 매출이 다소 회복세를 보이고는 있지만 아직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한 곳이 대다수다.

신오쿠보는 유명 상권과 완전히 다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국 드라마와 가요, 음식, 미용산업 등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은 젊은 층이 잇달아 방문하면서 코로나19, 한일관계 악화 등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신오쿠보가 속한 신주쿠 한국상인연합회 측은 현재 신오쿠보 일일 유동인구를 코로나19 이전(12만 명)의 80% 수준까지 회복한 약 10만 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날 기자가 찾은 삼겹살 전문점의 점장 이대균 씨는 “주말에는 오후 4∼5시 같은 시간에도 좌석이 꽉 찬다. 점심 저녁 시간대에는 손님이 너무 몰려 현 수준의 직원으로 감당이 안 될 정도”라고 했다. 그는 일일 매출 역시 코로나19 사태 이전의 80% 정도까지 회복됐다고 덧붙였다.

이가라시 씨는 “신오쿠보에서 치즈핫도그, 호떡 등을 먹으며 거리를 걸으면 마치 서울 홍대입구, 명동 등에 온 느낌”이라며 “코로나19로 한국 여행이 어려운데 이곳에서 일종의 대리만족을 느낀다”고 했다. 그가 말한 ‘신오쿠보에서 먹으면서 걷기(다베아루키·食べ步き)’ 행위는 최근 일본 젊은 층 사이에서 대단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또 뚱카롱(뚱뚱한 마카롱), 소떡(소시지+떡꼬치) 등 한국에서 인기를 끄는 음식들은 바로바로 신오쿠보에도 소개되고 있다. 이를 판매하는 음식점 앞에는 일본 젊은 층이 몰려 주말 저녁에는 긴 줄이 만들어지곤 한다.

강제징용 등 악화된 한일관계의 영향 역시 크지 않은 편이다. 가와무라 씨는 “양국 사이가 악화됐다는 사실은 늘 뉴스로만 접한다”며 “양국의 문화 교류는 더 깊어진 것 같다. 친구들과 한국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 시사 문제는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신오쿠보의 상권 변화도 뚜렷하다. 과거에는 한국 음식점, 한국 유명 아이돌 관련 잡화 매장이 대부분이었지만 최근 글로벌 커피 브랜드 스타벅스 등이 입점하는 등 단순한 한인 타운을 넘어선 종합 상권으로 변모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 셔터 내려간 하라주쿠…해외 관광객 감소 직격탄
신오쿠보를 떠나 하라주쿠의 다케시타(竹下) 거리로 이동했다. 하라주쿠는 1980년대 화려한 의상을 입은 ‘다케노코(竹の子)’족, 어두운 분위기의 ‘고스’ 패션, 만화 주인공의 의상을 그대로 따라하는 ‘코스프레’ 등의 성지로 불리며 소위 ‘하라주쿠 스타일’이란 신조어를 만들어낸 곳이다. 하지만 이날 400m 남짓한 다케시타 거리 주변에서 취재진이 목격한 폐점 매장만 10곳이 넘었다.

일본 대표 젊은이의 거리인 하라주쿠의 다케시타 거리 입구에 폐업한 채로 방치된 커피 브랜드 ‘도토루’ 매장. 코로나19 이후 해외 관광객 감소로 직격탄을 맞았다.

거리 입구의 유명 커피 체인점 ‘도토루’의 불은 꺼져 있었다. 간판 글씨 역시 군데군데 벗겨져 있었고 문에는 ‘입주자 모집’ 안내문이 걸렸다. 이 매장은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올해 5월 폐업했다. 이후 다섯 달이 흘렀음에도 아직 새 가게가 들어서지 않고 있다.

인근에도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가게가 즐비했다. 한 크레페 매장에는 “그동안 애용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말이 붙어 있었다. 바로 옆 건물의 1층(잡화 매장), 2층(스파게티 전문점) 모두 불이 꺼져 있었다. 폐업한 가게 앞에는 손님들이 먹다 남긴 음료 병, 깡통들이 지저분하게 놓여 있었다.

뒷골목에는 건물 전체에 가림막이 씌워진 곳도 있었다. 특정 매장 1곳이 아니라 건물 내 수십 개 매장이 사실상 폐업했다는 의미였다. 이날 만난 한 상인은 “코로나19 사태로 하라주쿠 매장의 약 3분의 1이 폐점을 하거나 폐점 예정이라는 말이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하라주쿠의 불황은 일본의 강력한 입국규제에 기인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다케시타 거리 상인회 관계자는 “지역 방문객의 70%가 외국인 관광객인데 관광객 발길이 끊겨 대부분의 가게가 고사 직전”이라며 “아직 코로나19 백신이 나오지 않은 상황인데 겨울철을 맞아 코로나19가 다시 유행하면 그때는 정말 끝”이라고 토로했다. 특히 하라주쿠가 소재한 시부야구는 도쿄에서도 가장 땅값이 비싼 곳이어서 매출 감소 후폭풍이 더 컸다.


○ 신오쿠보 방문객, 하라주쿠 추월
두 곳의 다른 모습은 통계로도 확인할 수 있다. 일본 철도회사 JR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하라주쿠역의 1일 평균 승차 인원은 7만2579명으로 신오쿠보역(4만9438명)의 승차 인원보다 약 46% 많았다.

하지만 동아일보가 일본 위치정보 빅데이터회사 ‘아구프’에 휴대전화 이용자의 위치정보 데이터를 토대로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하라주쿠역과 신오쿠보역의 각각 반경 500m 내 방문객 수 추이를 분석한 결과, 올해 초부터 근소한 차이로 신오쿠보의 방문객 수가 하라주쿠를 넘어섰다. 1월 1일 신오쿠보의 방문객 수는 1만9712명으로 나타나 근소한 차이로 하라주쿠(1만8598명)를 앞질렀다. 또 정부의 긴급사태 선언 후 첫 주말이었던 4월 11일(토요일) 당시 신오쿠보 방문객 수는 1만4645명인 반면 하라주쿠 방문객 수는 4967명으로 약 3분의 1에 불과했다.

하반기에도 이런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25일 기준 신오쿠보 방문객은 2만6868명까지 회복된 반면 하라주쿠 방문객 수는 1만4444명으로 나타났다.

방문객 감소가 뚜렷한 하라주쿠에서도 한국 브랜드와 관련된 매장은 나은 축에 속한다. 화장품 브랜드 ‘이니스프리’와 ‘에뛰드’ 매장을 운영하는 아모레퍼시픽 일본 지사 관계자는 “‘고투트래블’ 이후 한류에 관심 많은 일본인들이 잇달아 방문하고 있다”고 말했다. 메신저 ‘라인’의 캐릭터 사업 자회사 ‘라인프렌즈’ 측 역시 “방탄소년단과의 캐릭터 협업 상품이 인기를 얻으면서 9월 매장 방문객이 긴급사태 선언 직전인 올해 3월과 비교해 70%까지 회복됐다”고 밝혔다.

라인프렌즈 매장에서 만난 여고생 이토 고유키 씨(17)는 “하라주쿠는 이제 새로운 유행을 선도한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반면 신오쿠보는 막 발전하는 곳이고 새로운 것들이 나타나는 장소라서 좀 더 끌린다”고 말했다.


○ 한인 상인회 측 “신오쿠보 넘어 한류 영향력 확대”
최근 민영 ‘니혼TV’가 신오쿠보와 하라주쿠의 명암 교차에 관한 기획 보도를 내보내는 등 언론도 이 사안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마케팅 전문가 하라다 요헤이(原田曜平) 씨는 당시 방송에서 “K팝 등 한류로 무장한 신오쿠보처럼 하라주쿠 역시 단순한 패션 중심지를 넘어 새로운 콘텐츠를 발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신오쿠보 상인회 측은 최근의 호조세를 하라주쿠, 신주쿠 등으로도 확대할 뜻을 분명히 했다. 상인회 측은 하라주쿠와 신오쿠보의 활발한 교류를 위해 차로 약 10분 거리인 두 지역의 셔틀버스 노선 확장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신주쿠역까지만 운행하는 신오쿠보 지역 내 셔틀버스의 노선에 하라주쿠를 포함시켜 운행 범위를 확대한다는 뜻이다. 오영석 신주쿠 한국상인연합회 명예회장은 “한국 음식점이 하라주쿠에서도 신오쿠보 정도의 성공을 거둘 수 있다면 한류에 관심이 없는 일본인들도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범석 도쿄 특파원 bsis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