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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괴물[이은화의 미술시간]〈135〉

입력 | 2020-11-05 03:00:00


티치아노, ‘신중함의 우화’, 1550∼1565년.

참으로 이상한 그림이다. 각자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세 남자의 머리가 한데 그려져 있다. 왼쪽은 긴 수염의 노인, 가운데는 짙은 수염의 중년 남자, 오른쪽은 금발의 젊고 잘생긴 청년이다. 그 아래에는 세 마리의 동물 머리가 남자들과 똑같은 방향으로 그려져 있다. 세 사람인지, 머리 세 개 달린 괴물인지 알 수 없고, 동물들의 등장 이유도 궁금하다. 화가는 왜 이런 수수께끼 같은 그림을 그린 걸까?

이 그림을 그린 티치아노는 16세기 베네치아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이자 국제적으로 활동한 최초의 화가였다. 종교화, 신화화, 초상화, 심지어 침실용 누드화까지 모두 능했던 터라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 5세를 비롯해 로마 교황과 이탈리아 군주들까지 고객으로 두며 당대 최고의 명성을 누렸다. 성공의 길만 달려왔던 그가 노년에 그린 이 그림은 인생의 3단계를 동물에 비유한 우의화(寓意畵)다. 빛이 들어오는 오른쪽은 젊은 청년기, 가운데는 활기찬 중년기, 왼쪽은 노년기를 의미한다. 청년의 개는 충성심과 미성숙을, 중년의 사자는 용맹과 강인함을, 노년의 늑대는 탐욕과 교활함을 상징한다. 경험 많고 노련한 노년을 왜 하필 늑대에 비유했을까? 잘 보이진 않지만 그림 위쪽에 새겨진 라틴어 문구에서 화가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 “어제에서 배움을 얻어, 내일을 망치지 않도록, 오늘 신중하게 행동하라.” 과거의 실수를 거울삼아 탐욕으로 망친 인생이 되지 않도록 현재를 신중하고 지혜롭게 살라는 메시지다.

제목과 달리 죄와 참회의 우화로 해석되기도 한다. 노인 얼굴이 티치아노를 닮았기 때문에 젊은 시절의 경솔함과 잘못을 뉘우치는 화가의 자화상이라는 것이다. 살다 보면 누구나 실수하고 잘못을 저지른다. 참회하는 게 맞지만 합리화를 선택하는 경우도 많다. 게다가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지 않은가. 불리한 과거는 곧잘 잊는다. 어쩌면 화가는 이 기괴한 초상화를 통해 과거를 잊은 시간의 괴물이 되어선 안 된다는 경고를 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