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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크 귀순’ 부대서 또… 北남성 철책 남쪽 1.5km 헤집고 다녀

입력 | 2020-11-05 03:00:00

최전방 경계 구멍 뚫린 軍
2400억 들인 감지센서 작동 안해… 과학화 경계시스템 무용지물
14시간만에 잡히자 “귀순하겠다”… 軍, 북한군일 가능성 배제안해
경계 실패하고도 “지형에 사각”, 軍 어이없는 해명에 비판 쏟아져




북한 남성이 비무장지대(DMZ)를 거쳐 우리 군 최전방 경계부대(GOP) 철책까지 뚫고 유유히 남하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군 경계태세의 총체적 부실이 또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게다가 2012년 북한군 병사가 GOP 생활관 창문을 두드려 귀순 의사를 밝힌 ‘노크 귀순’을 겪은 동일 부대에서 이번 사건이 벌어졌다. 그간 구축했던 최전방의 ‘과학화 경계 시스템’도 사실상 무용지물이 됐다는 비판이 나왔다. 그럼에도 군은 “이 지역의 지형이 탐색 작전에 쉽지 않다”는 해명을 내놓아 논란을 키우고 있다.

4일 합동참모본부 브리핑 내용을 종합하면 20, 30대로 추정되는 A 씨가 강원 고성 지역의 군사분계선(MDL) 일대를 배회하는 모습이 2일 오후 10시 14분 우리 군 감시초소(GP)의 열상감시장비(TOD)에 3초간 처음 포착됐다. 8분 뒤에도 TOD에 A 씨가 30초가량 다시 관측됐지만 이내 사라졌다고 한다. 이 지역의 정보감시 수준을 최고 단계로 격상하고 DMZ 수색작전을 벌인 군은 3일 오후 7시 25분경 A 씨가 GOP 이중 철책을 뛰어넘는 모습을 GP 내 TOD로 포착했다. 경계 병력을 총동원했지만 만 하루 동안 DMZ를 누빈 A 씨를 막지 못한 것이다.

군은 그로부터 14시간이 지난 4일 오전 9시 56분경에야 A 씨 신병을 확보했다. A 씨는 이미 GOP 철책으로부터 1.5km 남쪽까지 이동한 상태였다. 그는 파란색 사복을 입은 상태로 귀순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관계 당국은 A 씨가 이중 철책을 넘을 당시 월남하기 위한 적절한 시점을 계산한 정황 등을 고려해 대남 침투를 시도한 북한군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군 관계자는 “비무장 상태가 아니라 북한 특수부대 등 무장 인원이었다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군이 대침투 경계태세인 ‘진돗개 하나’를 발령한 것도 2일 심야에 접경지역 특이동향을 포착한 지 만 하루가 지난 뒤였다. A 씨가 3일 철책을 뛰어넘기 전까지 군은 DMZ 수색작전을 벌인다며 그간 상주하지 않았던 GP에까지 경계인원을 투입했지만 GP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철책에 접근하는 A 씨를 육안으로도 포착하지 못했다. 게다가 철책이나 MDL 일대를 비추는 중·근거리 감시카메라도 A 씨의 접근을 발견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더욱이 A 씨가 최전방 경계의 최후 보루인 GOP 철책을 넘을 당시 철책에 설치된 감지센서(광망)가 작동하지 않았다. 최전방 모든 GOP에는 이 같은 ‘과학화 경계 시스템’이 설치돼 있어 특정 물체가 접촉하면 센서가 울리고 부대 감시통제소로 즉각 전달된다. 군은 2012년 ‘노크 귀순’ 이후 대북 감시 강화를 위해 2400억 원을 들여 이 시스템을 구축했다. 하지만 잦은 고장과 오작동으로 감시 공백을 유발한다는 우려가 계속됐다. 이번 사건으로 우려가 현실화된 셈이다. 군은 고장 여부를 확인해 필요한 보완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한 군 관계자는 “철책 센서만 제때 울렸어도 초동 조치 병력이 출동해 A 씨의 신병을 확보했을 것”이라며 “TOD로도 A 씨를 놓쳤다면 사실상 영영 발견하지 못했을 수도 있는 이번 사건의 심각성을 엄중히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군은 4일 브리핑에서 경계 작전에 어려움이 많았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합참 관계자는 “동부지역 GOP 일대 지형은 능선이 많고 능선 쪽에 철책이 설치된 곳이 많다. 감시 장비로 전방 모든 지역을 관측할 순 없다”고 밝혔다. 또 “아직 완전한 겨울도 아니고 녹음이 우거져 있는 상태이고 지형의 영향으로 감시 사각지점이 있다”고도 했다. 군 내부에서조차 이런 발언을 두고 “경계 실패를 안일하게 보고 있다”는 말들이 나왔다.

합참은 해당 부대에 전비태세검열단을 파견해 A 씨 귀순 과정에서 드러난 군 경계태세의 구멍에 대해 전반적으로 조사할 방침이다. 관련 부대 지휘관들의 대규모 문책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윤상호 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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