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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익은 음의 곡선… “슬픔을 축하합시다”

입력 | 2020-11-05 03:00:00

3집 ‘Love Goes’ 낸 샘 스미스
“최대한 스스로 즐기면서 제 내면 있는 그대로 표현했죠
월드투어로 관객 볼 때까지 시골마을 걸어볼까 해요”




유니버설뮤직 제공

지난달 31일 저녁, 영국 싱어송라이터 샘 스미스(28·사진)의 온라인 콘서트를 봤다. 런던의 유서 깊은 녹음실인 ‘애비로드 스튜디오’에 차린 단출한 무대가 생동했다.




그의 성대가 노란 융단으로 돼 있는 상상을 잠시 했다. 일본식 회칼로 뉴욕 치즈케이크를 베듯. 뚝, 뚝. 동그란 음표 하나하나가 송편처럼 정갈하게 빚어져 입술로 배어 나오는 모양새. 청각적 장관이었다.

“모두들 잘 지내세요? 우리 생에 겪는 가장 이상한 시절에 이런 방식으로라도 저의 새 음악을 전해드리고 싶었습니다. 최대한 편안하게 즐겨주시면 좋겠어요. 차 한 컵, 와인 한 잔 들고요.”



화면 너머 애비로드의 스미스는 ‘편안하게’를 강조했지만 기분 좋은 긴장감이 모세혈관을 수축시켰다. 그는 1시간여 동안 신곡과 대표곡을 부르고 신작 제작 이야기도 들려줬다.

‘내가 거침없고 젊었으면/잃는 게 두렵지 않았으면…’(‘Young’ 중)

3년 만의 정규앨범인 3집 ‘Love Goes’(지난달 30일 발매)의 첫 곡, 첫 소절부터 아직 충분히 젊은 이 가수의 모순적 가사에 설복됐다. 스미스가 그리는 농익은 음의 곡선 때문이다. 영국 가수 이머진 힙의 ‘Hide and Seek’처럼, 여러 명의 스미스 목소리 분신이 화음으로 주선율을 감싸는 독특한 아카펠라 곡.




스미스는 2014년 데뷔해 아델(32)과 함께 영국식 솔·팝 발라드로 세계인의 마음을 울렸다. ‘I‘m Not the Only One’ ‘Stay with Me’는 이미 21세기 발라드 고전. 그의 집엔 4개의 그래미, 3개의 브릿 어워드, 1개의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007 스펙터’ 주제곡) 트로피가 있다. 2년 전 내한공연(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들려준 완전무결한 라이브 실력과 비단결 음색은 아직도 신기루처럼 뇌리에 남아있다.

“이번 앨범은 런던, 스웨덴, 로스앤젤레스, 뉴욕을 돌며 어느 때보다 다양한 음악가와 함께 제작했습니다. 1집은 데뷔라 힘들었고, 2집은 주위의 압박이 심했지만 3집은 최대한 스스로 즐기면서 제 내면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려 했어요.”

캘빈 해리스와 함께 만든 댄스곡 ‘Promises’의 전주가 깔리자 스미스는 교태로운 춤을 추며 “애비로드를 ‘게이 바’로 만들겠다”고 눙쳤다.

신작의 분위기가 가장 잘 집약된 곡은 미디엄 템포의 ‘So Serious’라고.

“‘머리 위로 손을 뻗어봐. 나처럼 가끔 슬퍼질 때면’이란 가사는 어쩌면 3집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인지도 몰라요. ‘자, 다같이 슬퍼합시다. 슬픔을 자랑스러워하고 축하합시다!’라고 말을 건네는 거죠.”



스미스는 “로스앤젤레스에서 다른 음악가들과 이 곡의 작업을 마친 뒤, 발코니에 틀어놓고 샴페인과 춤을 함께 즐긴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피아노 발라드 ‘For the Lover that I Lost’는 지난해 셀린 디옹이 먼저 발표한 곡. 스미스는 진성과 가성의 음악학적 경계를 무력화시키는 특유의 롤러코스터 절창으로 디옹의 노래를 훔쳐내 ‘샘 스미스 발라드’로 만들어 버렸다.

“가끔은 스스로 50대처럼 느껴져요. 몇 년째 휴가를 가지 못했습니다. 앨범 작업을 끝냈으니 이제 스코틀랜드의 시골 마을로 가서 아무렇게나 입고 하염없이 이곳저곳을 걸어볼까 해요. 월드투어로 여러분을 다시 뵐 수 있을 때까지는….”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