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교-고가 하부공간의 재발견
①서울 용산구 한남고가와 육교 하부에 최근 조성된 휴게 조경 공간. 무거운 음지의 분위기를 걷어내기 위해 꽃잎 모양의 흰색 콘크리트조 차양 조형물을 놓고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을 밝혔다. ②생활체육시설을 갖춘 서울 동대문구 이문고가 하부 문화 공간. ③서울 성동구 옥수고가 하부의 커뮤니티 공간. ⓒ이건엽·서울시 제공
육교와 고가가 애물단지처럼 여겨진 시기가 있었다. 관리가 소홀해지기 쉬운 그늘진 하부 공간 탓에 육교와 고가는 처치 곤란한 옛 구조물의 잔재로 보이기 쉽다. 하지만 관리만 잘된다면 보행자와 차량의 소통에 이만큼 효율적인 장치도 드물다.
지난달 완공된 서울 용산구 북한남삼거리 조경 공간은 음습한 이미지의 육교와 고가 하부가 건축가의 노력에 의해 아늑하고 쾌적한 휴식처로 변모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잠시 앉아 쉴 수 있는 차양 구조물, 카페, 화장실이 보행자 동선(動線)의 흐름을 따라 말끔하게 자리 잡았다.
남산1호터널과 한남대교 사이를 잇는 한남제1고가차도, 왕복 10차선 도로 위를 횡단하는 길이 55m 폭 3.5m의 육교가 접하는 이곳은 인근 공연장(블루스퀘어), 버스정류장, 지하철역 이용객 등 행인의 왕래가 잦은 지역이다. 전에는 블록 포장이 덮인 완만한 계단식 공터로 덩그러니 비워져 있었다.
고가와 육교 아래 공간의 분위기를 결정하는 요인은 그곳에 드리워져 있는 커다란 그늘이다. 오로지 기능만을 고려해 지어진 교통 구조물의 이미지가 또렷이 드러나는, 무겁고 차가운 그림자다. 천 교수는 꽃잎 형태를 본뜬 차양 구조물을 배치해 삭막한 응달의 기운을 차단했다. 차양에 촘촘히 박힌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은 보행자의 시야를 환하게 밝힌다.
“나무가 울창한 숲속 오솔길은 그늘을 품고 있지만 음습하지 않다. 빼곡한 나뭇가지와 이파리 사이로 흩뿌리듯 스며드는 햇빛 덕분이다. 깊은 밤 들길도 별빛이 함께한다면 고적하지 않다. 그런 경쾌한 자연의 이미지를 담아내고 싶었다.”
하얀색 육각형 나팔꽃 송이를 세운 모습의 지름 6m, 높이 4m의 차양 구조물 9개는 유리섬유강화콘크리트(GFRC)로 만들었다. 크리스찬디올이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에 2015년 문을 연 플래그십 스토어 ‘하우스 오브 디올’의 비정형 외벽 작업에 참여한 건축조형물 전문 업체가 제작을 맡았다. 천 교수는 “저렴한 기성품 차양 구조물을 놓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면 작업의 의미가 없어진다고 판단해 조금은 무리해서 관철한 요소”라고 했다.
카페 운영은 블루스퀘어가 맡았다. 출연자와 관객이 공연장 밖에서 한결 여유롭게 만날 수 있는 공간이 열린 셈이다. 주차장 외벽 앞에 노출돼 있던 옥외 변압기는 4m 높이의 흰색 알루미늄 타공 패널로 둘러쳐 머무는 이의 시야를 어지럽히지 않도록 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