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의 역사/킴 닐슨 지음·김승섭 옮김/360쪽·1만8000원·동아시아

이 끔찍한 이야기는 당시 노예무역에선 놀랄 일이 아니었다. 인격이 아닌 상품으로 취급되는 노예에게 장애는 ‘흠결’이자 가치를 떨어뜨리는 요소였다. 그런가 하면 미국 건국 전 북아메리카 토착민의 한 부족에서 신체적 결함은 장애로 간주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결핍을 보완해 줄 공동체와 연결되지 못한 상태를 장애로 봤다. 책은 이렇게 사회적 맥락에 따라 달라지는 장애의 개념을 렌즈로 미국의 역사를 들여다본다.
1492년 이전 북아메리카 토착민의 이야기로 책은 시작된다. 무수히 다양한 형태의 부족 사회가 펼쳐졌던 이 시기, 장애의 정의는 뚜렷하지 않았다. 오히려 유럽인이 북아메리카를 점령한 뒤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됐다. 때로는 노예 자체가 장애로 여겨졌고, 장애인의 입국을 제한하는 이민법이 강화되기도 했다.
저자는 헬렌 켈러의 정치 연설을 우연히 접한 뒤 장애역사 연구에 뛰어들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켈러와 그의 스승 앤 설리번의 정치적 삶에 주목한 저서를 집필하기도 했다. 새로운 시각에서 역사를 보려는 시도가 돋보인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