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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 너머를 봐야 공이 들어간다[오늘과 내일/김종석]

입력 | 2020-11-07 03:00:00

도전 즐긴 이건희 회장, 퍼팅도 과감
목표 앞에서 머뭇거리지 말아야 성과




김종석 스포츠부장

최근 별세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골프 애호가로도 유명하다. “하루 1000개 이상 연습 볼을 친 적도 있다. 정형외과적 어프로치 없이는 바른 스윙을 할 수 없다고 했다. 퍼팅을 정확도의 게임이라며 중시했다.” 안양CC 총지배인으로 10년 동안 이병철 삼성 창업주, 이건희 회장과 인연을 맺은 안용태 GMI컨설팅그룹 회장의 회고다. 한 일간지 추도사에 따르면 이 회장은 ‘퍼팅이 컵에 미달하는 것은 소심하다고 했고, 지나가는 사람은 쓸 만하다’는 얘기를 했다고 한다.

“공무원이야.” “달걀 아니야.” 골프에서 퍼팅이 짧아 홀에 미치지 못했다면 동반자에게 이런 짓궂은 놀림 한 번쯤 듣기 마련. 과단성 있게 추진하지 못하고 소신 없이 눈치만 보는 상황이나 마치 공이 깨지기라도 할세라 과감하게 밀어주지 못하는 새가슴을 빗댄 것이다.

‘네버 업, 네버 인(Never up, Never in)’이다. 퍼팅한 공이 홀을 지나쳐야만 홀 안으로 떨어질 수 있다. 지극히 당연해 보이는 진리를 실천하기 힘든 이유는 뭘까. 골퍼라면 누구나 피하고 싶은 스리퍼팅의 원인도 첫 퍼팅이 짧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골프 여제’ 박인비는 컴퓨터 퍼팅이 주무기다. 이번 시즌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 평균 드라이버 비거리는 239.8야드로 최하위권(139위)이지만 라운드당 평균 퍼팅 수는 2위(28.76개). 드라이버는 쇼, 퍼팅은 돈이라고 했던가. 박인비는 상금 랭킹 선두(약 106만 달러)를 달리고 있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상금, 평균 타수 1위인 김효주도 비거리는 47위(237.2야드)에 머물지만 퍼팅 수는 가장 적다(29.17개).

박인비에게 퍼팅 비결을 물었더니 “짧은 퍼팅이 없었던 것 같다. 어려서부터 늘 그랬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조언까지 해줬다. “어렴풋이 거리를 맞추되 홀 뒤 30cm 지점을 노리는 게 좋은 거리감이라 여기고 퍼트를 한다. 스트로크보다는 거리감에 집중하다 보면 홀을 지나가는 퍼트가 나온다.”

300m 티샷이나 1m 퍼팅이나 똑같이 한 타다. 14개 클럽 가운데 퍼터를 가장 자주 쓴다. 하지만 드라이버는 헤드가 부러질 정도로 연습하면서도 퍼팅은 가볍게 여겨 제대로 공 들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골퍼의 자존심이 비거리만은 아니다. 퍼팅 훈련은 지루하면서도 고된 것이 사실이다. 박인비는 하루 훈련 스케줄을 짤 때 드라이버, 아이언, 웨지를 각각 20%, 퍼팅은 40% 비율로 배정한다.

동료들도 부러워할 만한 퍼팅 실력을 지닌 박인비도 집에 10개가 넘는 퍼터를 갖고 있다.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린 상태나 컨디션에 따라 퍼터를 바꿔가며 쓴다.

골프의 퍼팅은 축구에서는 골 결정력과 같다. 양발을 자유롭게 쓰는 손흥민은 어려서부터 프로 무대를 휘젓고 다니는 요즘까지도 오른발과 왼발을 모두 사용해 트래핑과 슈팅을 할 수 있도록 반복 훈련하고 있다.

골프에서 홀의 직경은 108mm다. 그래서 18홀을 돌다 보면 백팔번뇌에 빠진다고 한다. 그린에서 머릿속은 더 복잡해진다. 잡힐 듯 잡히지 않아서다. 퍼팅에 앞서 홀까지 가상의 선을 그리게 된다. 그린 경사, 잔디 결도 세심하게 읽는다. 퍼팅 라인은 가보지 않은 길이라 처음엔 불안하고 망설이게 된다. 일단 홀을 지나치게 퍼팅을 하게 되면 설사 빗나가더라도 남은 퍼팅은 한결 편해진다고 한다. 공이 지나간 길을 한 번 봤기 때문에 그 다음 퍼팅 성공률은 높아진다는 게 고수들의 설명이다.

목표를 눈앞에 두고 머뭇거려선 안 되는 게 골프뿐일까. 평소 노력과 경험을 믿고 과감하게 도전해야 원하는 성과를 얻을 수 있다. 그래야 후회라도 덜 한다.

김종석 스포츠부장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