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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돌보는 사람도 치료해야 효과”… ‘보호자 케어’ 개발 선구자

입력 | 2020-11-07 03:00:00

[떠오르는 베스트 닥터]<16> 정지향 이대서울병원 신경과 교수
“보호자도 상당수 인지장애 노출”
의료진과 만나 심리상태 등 체크
부담감 줄이고 대처법 등 알려줘




정지향 이대서울병원 신경과 교수는 치매는 지속적으로 치료해야 하는 질병이라고 말한다. 또 치매 특성상 환자뿐 아니라 보호자까지 ‘케어’해야 제대로 된 치료 효과를 낸다고 강조한다. 이대서울병원 제공

《80대 A 할머니의 남편은 치매 환자다. 치매 환자의 증세는 예측 불가다. 남편은 일종의 ‘망상’ 증세를 보였다. A 할머니가 시장에 다녀온다고 말했는데도 “다른 남자를 만나고 온 거냐”며 불같이 화냈다. 어떤 설명도 통하지 않았다. A 할머니는 정지향 이대서울병원 신경과 교수(51)가 개발한 치매 환자 보호자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A 할머니는 남편이 치매로 기억력이 왜곡돼 망상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치료할 수는 없으니 가급적 망상 증세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게 최선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이후 A 할머니는 시장에 갈 때도 남편을 데리고 갔다. 그 결과 남편은 마음이 놓였는지 더 이상 아내를 의심하지 않았다.》

정 교수는 치매 분야에서 손꼽는 ‘베스트 닥터’다. 그런 정 교수가 치매 치료와 관련해 가장 먼저 꺼낸 말은 의외다. “치매는 다른 질병과 마찬가지로 포기하지 않고 치료해야 한다. 다만 A 할머니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환자는 물론 보호자까지 함께 살펴야 하는 질병이다.”



○ “보호자 심리-건강상태 좋으면 환자도 효과”
치매 초기라면 환자가 스스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병이 악화하면 판단 능력을 잃는다. 그 모든 의사결정과 판단은 보호자의 몫이 된다. 보호자가 지쳐 쓰러지면 환자의 진료도 사실상 종결된다. 게다가 보호자는 대부분 배우자다. 그러니 환자와 보호자 모두를 살펴야 한다는 게 정 교수의 주장이다.

2014년 정 교수는 치매 환자의 보호자를 위한 ‘아이케어(I-CARE)’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치매 환자는 갑자기 괴팍해지거나 신체 활동 이상 등 다양한 증세를 보인다. 증세별로 대처법을 개발하고 보호자를 교육하며, 보호자의 심리 상태를 분석하는 게 이 프로그램의 목적이었다.

이후 4년 가까이 이대병원을 포함해 수도권 7개 병원에서 임상 시험이 진행됐다. A 할머니를 비롯해 38명의 보호자가 참여했다. 각 보호자는 2개월 동안 치매 전문의와 임상심리사를 만나 심층 면담을 했다. 먼저 환자에게서 가장 개선됐으면 하는 과제를 정하고 대처법을 논의했다.

의료진과 보호자는 2주마다 만나 진행 상황을 체크했다. 2개월이 지난 후 최종 평가를 했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 정 교수는 “프로그램을 끝까지 수행한 보호자의 경우 치매 환자를 부양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우울증세 모두 감소했다”며 “보호자의 심리와 건강 상태가 좋을 경우 환자의 치료 효과도 높았다”고 말했다.

이 연구 논문은 2019년 대한신경과학회가 발간한 영문 의학 저널에 실렸다. 정 교수는 “이런 방식의 ‘보호자 케어’가 아직까지는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정 교수는 오래전부터 보호자 케어를 강조해왔다. 치매 환자의 보호자 25명을 대상으로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 자기공명영상(MRI) 촬영을 한 것도 그런 노력 중 하나다. 그 결과 40% 이상에서 경증 혹은 그 이상의 인지 장애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 교수는 “지금은 보호자이지만 언제 환자가 될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 ICT 활용 프로그램, 신의료기술로 지정 받아
치매를 완치시킬 수 있는 약은, 적어도 현 단계에서는 없다. 다만 예방 차원의 약들이 시중에 나와 있다. 이 중 일부가 최근 건강보험 적용이 취소돼 복용자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치매 진단이 떨어지면 예방이 아닌 치료 목적으로 약을 먹어야 한다. 이 경우는 절대 약을 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의학계의 일관된 평가다. 정 교수는 “약물 치료를 중도 포기하면 증세가 악화하는 반면 꾸준히 진행하면 증세가 악화하는 속도가 30% 정도는 느려진다”고 말했다. 따라서 약물 치료는 절대로 중단해선 안 된다.

인지 기능을 개선하는 치료도 도움이 된다. 현재 보건복지부는 250곳 이상의 치매안심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서울 강서구에도 치매안심센터가 있는데, 정 교수는 이 센터의 센터장도 맡고 있다. 이 센터는 경증 치매 환자를 대상으로 인지 기능 개선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이 센터는 현재 ‘언택트’로 200여 명의 경증 치매 환자를 대상으로 인지 치료를 하고 있다.

인지 치료는 매일 정기적으로 치매 환자들에게 간단한 숙제를 낸 뒤 답안을 받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를테면 숫자 몇 개를 준 뒤 계산하라거나 속담을 보낸 후 그 안에 몇 개의 자음과 모음이 있는지 등을 세어 보고 답안을 제출하게 하는 식이다. 정 교수는 “이런 방법만으로도 지속하면 인지 기능 개선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병원 내에 로봇 등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한 치료 프로그램을 국내 처음으로 도입하기도 했다. 주로 초기 혹은 경증 치매 환자들의 인지 기능 개선과 교육을 위한 프로그램인데, 2017년 신의료기술로 지정됐다.

이 프로그램은 2개월 단위로 진행된다. 환자들은 매주 의료진과 일대일로 만나 진료를 받는다. 이 진료 또한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1회 진료에 5만∼12만 원으로, 다소 비싼 게 단점이다. 이대병원 외에 일부 병원이 시행 중이다.

정 교수는 요즘 병원 내에 치매 전문 센터를 추진 중이다. 정 교수는 “노인 치매 환자가 많아지면서 체계적으로 치매를 연구하고 프로그램화하는 대학병원급 센터가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 정교수의 ‘부모님 치매예방법’ ▼가족 일상사 상세 질문
폰 채팅-신문기사 읽기도
인지 기능 하락 막아

일주일에 3회 이상, 매회 30분 이상의 유산소 운동을 할 것. 생선 등을 통해 단백질 섭취를 늘릴 것. 커뮤니티 활동에 참여해 다른 사람과 소통할 것. 치매 예방을 위한 일반적 수칙이다. 추가로 자식들이 살펴야 할 점도 있다. 정지향 이대서울병원 신경과 교수가 제안하는 대표적인 두 가지를 소개한다.

① 주기적으로 만나거나 전화로 대화하라

부모님의 성격이 바뀌었는지, 기억력이 떨어졌는지, 일상생활을 잘 수행하는지 등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일단 부모가 가족에 대한 관심과 흥미가 떨어졌다면 더 신중하게 살펴야 한다. 질문을 하되 가급적 6하 원칙에 맞춰 답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지난번 저를 만났는데, 그 날짜가 언제이며 무엇을 했고, 왜 그랬는지 말씀해 보세요” 하는 식이다. 최근 뉴스에서 가장 크게 다룬 사건을 묻는 것도 괜찮다.

일상생활이 잘 이뤄지고 있는지도 구체적으로 물어보는 게 좋다. 집청소는 얼마나 하며, 은행 등 돈 관련 일들은 어떻게 처리하고 있으며, 음식은 잘 만들고 관리는 잘하는지 등을 세세하게 체크한다. 더불어 시력, 청력, 치아 상태도 살펴야 한다. 다만 주의할 게 있다. 관심을 많이 갖는 것은 좋지만 잔소리가 지나치면 부작용이 더 크다는 점이다. 많이 말하기보다는 부모님의 이야기를 듣는 게 더 중요하다.

② 스마트폰과 신문을 적극 활용하라

정 교수는 “스마트폰을 잘만 이용하면 인지 기능이 떨어지는 것을 막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노인들이 스마트폰을 통해 콘텐츠를 찾아 즐기고 주변 사람들과 채팅함으로써 인지 기능이 개선된다는 것. 추가로 녹음도 해 보고 화상통화도 해보는 식으로 새로운 놀이를 찾는 것도 도움이 된다. 스마트폰 위치 추적 시스템은 만일의 사고에 대비하기 위해 깔아두는 게 좋다.

정 교수는 신문을 활용하는 방법도 제안했다. 일반적으로 치매 예방책으로 일기 쓰기가 권고되는데, 현실적으로는 그게 어렵다. 인지 기능이 떨어진 데다 일상생활 자체가 단조로워져 일기를 쓸 내용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문을 활용하라는 것이다. 신문 기사를 읽고 그 내용을 기억해 다시 써 보도록 하는 훈련이 좋다. 미래를 대비해 정리하는 버릇을 만들어놓는 것도 중요하다. 책상용 달력이나 휴대용 수첩, 노트에 모든 것을 기록하도록 권하면 된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