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훈의 政說-03]
10월 9일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김무성 전 의원이 주도하는 ‘더 좋은 세상으로 포럼’에 참석했다. [동아db]
이번에도 예외 없이 ‘반문연대’가 등장했다. 누구를 돕기 위해서도 아니고 반대하기 위해 연대를 형성한다는 것, 참으로 낯 뜨거운 일이다. 하지만 정치권에선 예삿일이다. 여야 불문 모두 그렇다. 더불어민주당(민주당)을 포함한 진보진영도 과거 ‘반박연대’를 추진한 적이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반대한 연대다.
‘반문연대’는 당연히 문재인 대통령을 반대하는 연대다. 그것도 시즌 2다. 2017년 대선 당시 이미 반문연대가 출현했다. 2017년 3월 7일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였던 김종인 의원(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민주당 탈당을 선언했을 때, 김무성 당시 바른정당 의원은 이렇게 언급했다. “지금 정치권을 이렇게 엉망으로 만든 세력은 패권주의 세력들이고, 우리나라를 위해서는 분권형 개헌을 빨리 해야 한다. 이 두 개에 의견이 같기 때문에 ‘반문연대’를 해서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같이 노력하기로 했다.” 그래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바른정당이 ‘분권형 대통령제’와 ‘대선 전 개헌’을 매개로 한 반문연대, 곧 ‘제3지대 빅텐트’를 추진했지만, 성사되지는 않았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역시 입국 후 개헌을 매개로 반문연대의 중심에 서고자 시도했으나, 대선 중도 포기로 이 또한 이뤄지지 않았다.
‘제3지대 빅텐트’와 거리 멀어
이런 움직임에 대해 민주당 전해철 의원은 이렇게 반박했다. “반문연대를 기치로 연대하자는 각 당은 국민 지지를 받겠다는 희망을 포기해버린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중략) 더욱이 정당 간 연대에는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명분과 원칙이 필요한데, 문재인 대통령에 대항하자는 프레임 하나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때 반문연대는 친박계와 비박계의 갈등 봉합에 초점이 맞춰진 것으로, ‘제3지대 빅텐트’하고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반문연대는 2020년 4월 총선을 앞둔 시점에 다시 등장했다. 자유한국당이 비례위성정당 명칭을 ‘비례자유한국당’으로 하려 했지만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유사 명칭으로 사용 불허’ 판정을 받고 난 직후다. 비례위성정당 명칭을 차라리 ‘반문연대’로 하자는 의견이 당 내외에서 나왔다. 보수 대통합을 지향하는 비례위성정당에 이 명칭이 합치하지 않느냐는 의견이었다. 물론 성사되지는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반문연대를 기치로 내걸고 나온 이가 바로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다. 안 대표는 2월 28일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언급했다. “정치공학적인 보수 통합과 ‘묻지 마 반문연대’는 처음부터 반대했다. 그러면서도 대안을 만들고 제대로 일하는 정당 하나 정도는 살아남아야 한국 정치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실용정치, 중도정치의 길을 가면서도 정권을 심판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국민의당이 과감하게 지역구 공천을 하지 않는 희생적 결단을 통해 이 두 가지를 이룰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지역구 후보자를 내지 않는 방식으로 자유한국당과 사실상 ‘반문연대’를 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이런 일방적 반문연대 선언으로 국민의당은 자유한국당 비례위성정당에 돌아갈 정당투표를 챙기길 기대했지만, 원했던 만큼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자유한국당의 비례위성정당 명칭도 결국 ‘미래한국당’으로 정해졌다.
다시 힘 얻는 ‘반문연대’ 주장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왼쪽)와 금태섭 전 의원. [동아db]
이쯤 활용했으면 용도 폐기를 할 법도 한데, 국민의힘 주변에서 최근 내년 재보선을 앞두고 다시 반문연대가 힘을 얻어가는 중이다. 이번에도 김무성 전 의원이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한다. 10월 9일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을 자신이 주도하는 ‘더 좋은 세상으로 포럼’(일명 마포포럼)에 초청해 행사를 가진 뒤 이렇게 불을 지폈다. “내년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와 다음 대선에서 이긴다는 보장이 없다. 비상 상황에서 우리 당의 모든 울타리를 다 없애고 반문연대에 누구든 참여해 모든 것이 오픈된 상황에서 국민경선을 통해 후보가 선출된다면 이길 수 있다.”
10월 29일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도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이렇게 언급했다. “반(反)문재인의 어떤 전선에 동의하는 분들은 모두 다 받아드려야 된다.” 무소속 홍준표 의원도 10월 14일 이런 주장을 내놨다. “이치대란(以治待亂)이라고 했다. 이제 모두가 하나가 돼야 한다. 우리가 뭉쳐야 세력이 커지고 중도가 붙는다. 반문재인, 반좌파는 누구든 가리지 않고 뭉쳐야 할 때다.” 홍 의원은 2017년 5월 대선 당시 바른정당이 제안한 ‘자유한국당-국민의당-바른정당 3자 반문연대’를 거절했다. 하지만 2020년 총선 때는 “총선이 끝나면 현 정부에 반대하는 모든 정당과 반문연대 결성을 추진해 문재인 대통령 타도에 앞장서겠다”며 입장을 선회했다.
무소속 김태호 의원도 10월 29일 ‘더 좋은 세상으로 포럼’ 행사에 참석해 이렇게 제안했다. “진영 논리를 극복하고자 하는 비문·반문의 모든 세력이 함께하는 범야권 대연대를 형성하자. (중략) 완전개방형 국민경선의 플랫폼을 구축해 시민과 국민이 선택한 후보가 우리 당의 후보가 되도록 하자.” 잠재적 대권주자인 홍준표 의원과 김태호 의원의 반문연대 주장은 자신들의 복당을 허락하라는 뜻으로 보인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반문연대를 거의 기정사실로 몰아가는 분위기다. 그는 11월 4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안철수 대표와 민주당 금태섭 전 의원을 언급하며 이렇게 말했다. “모두 현 정권이 잘못하고 있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선거 막판까지 가면 힘을 합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고 본다.” 관전평처럼 말했지만, 희망이 강력하게 투영된 발언이었다. 김상훈 국민의힘 4·7 재보궐선거 경선준비위원장도 11월 4일 범시민사회단체연합이 주최하고 ‘더 좋은 세상으로 포럼’이 후원한 ‘좋은 후보 선정 특별초청토론회’가 끝난 후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언급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 민주당 금태섭 전 의원 얘기가 나오는데 힘을 합쳐서 선거를 치를 필요가 있다.” 김상훈 위원장은 최근 당내 중진들과 회동을 갖고 안철수 대표와 합당을 포함해 어떤 형태로든 반문연대를 조성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 위원장도 2017년 대선 직전 민주당을 탈당했을 때는 반문연대를 고려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제 김 위원장의 머릿속에는 반문연대가 더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일단 연대 대상으로 거론되는 인물에 대한 불신이 강한 것으로 보인다. 그럴 정도의 깜냥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이보다는 차라리 당내 참신한 초선의원들이 더 낫다고 보는 것 같다.
김 위원장은 최근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도 만났다. 서울과 부산지역 중진들과 연쇄 회동도 가졌다. 이들 또한 서울시장, 부산시장 후보군이다. 이들과 회동은 김택진 대표를 영입하려는 시도에 대한 반발을 무마하는 차원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외부에서 인재를 구할라치면 김 대표 정도는 돼야 한다는 것이 김 위원장의 생각이라면, 안철수 대표 정도에 만족할 리 만무하다. 김 위원장의 의중을 잘 아는 안 대표는 반문연대를 애써 외면 중이다. 지난 총선 때 반문연대를 기치로 내걸었다 크게 재미를 보지 못한 탓도 없지 않을 것이다.
이제 결론을 내려보자. 반문연대는 성공한 적이 있는가.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 2017년 대선 때도 실패했고, 2020년 총선 때도 실패했다. 반문연대를 하자고 말했지만, ‘반문’이라는 목표 달성에 필수적인 ‘연대구조’조차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했다. 각자 자신의 이해관계를 투영해 연대를 시도하다 그것이 반영되지 않으면 이탈하는 사람이 적잖았기 때문이다. 설령 연대구조가 완성돼 실행에 들어갔더라도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었을까. 이것도 의문이다.
과거 연대에 성공한 대표적 전례로 김영삼 전 대통령의 ‘3당 합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DJP 연합’을 꼽을 수 있다. 이 두 사례의 기억이 너무 달콤하기 때문에 언제나 선거 때면 연대를 추진하곤 하지만, 연대로 늘 선거에서 이기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더욱이 ‘3당 합당’과 ‘DJP 연합’은 반문연대처럼 아무개를 반대하니까 힘을 합치자는 식의 연대가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반문연대의 주술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아니, 아예 정치권에서 ‘반땡(O)연대’라는 표현이 사라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국 정치가 선진화하려면 반드시 끊어야 할 마약이라 여기길 바란다.
연대구조 만들어낼 합리적 방식
그래도 연대는 필요한 것 아니냐고 반론을 제기하고 싶을 것이다. 맞다. ‘연정’ 형태의 연대는 앞으로도 필요하다. 이는 곧 ‘가치연대’를 의미한다. 연대를 원한다면 최소한 가치의 공유를 전제로 추진하라는 얘기다. 합당이나 분당, 그리고 탈당이 성행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의원내각제를 채택한 서유럽 국가에서 ‘연정’이 일반적인 이유는 분명하다. 정당의 정체성을 상실하지 않으면서도 연대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는 합리적 방식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연정’에 들어가기 전 해당 정당들은 구체적인 정책 의제의 조율 과정을 거치기 마련이다. 가치를 공유하는 과정이다. 내년 재보선과 차기 대선을 앞두고 연대가 필요하다면 이런 방식으로 하라는 얘기다. 이처럼 ‘모듈러(modular) 정치’를 하면 간판갈이에 들어갈 비용도, 새 간판 이름을 외우느라 들어가는 사회적 비용도 절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종훈 정치경영컨설팅 대표·정치학 박사
[이 기사는 주간동아 1264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