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DB.
한때 반딧불과 반딧불이를 두고 ‘반딧불이’는 곤충 이름이고, 그 곤충의 꽁무니에서 나오는 빛이 ‘반딧불’이라는 주장이 세를 얻기도 했다. 지금은 어떨까.
반디, 반딧불, 반딧불이, 개똥벌레 모두 같은 말이다. 이 중 반딧불만 ‘반딧불이의 꽁무니에서 나오는 빛’과 ‘반딧불이’의 뜻으로 함께 쓸 수 있다. 즉 반디와 반딧불이, 개똥벌레는 ‘반딧불이의 꽁무니에서 나오는 빛’으로 쓰지 못한다는 말이다.
하룻강아지의 어원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대체로 ‘하릅강아지’가 변한 것으로 본다. 지금은 거의 쓰이지 않지만 ‘하릅’은 한 살 된 소, 말, 개 등을 이르는 말이다. 그러니 하릅강아지는 ‘한 살짜리 강아지’다. 한 살짜리 강아지가 범에게 덤빈다고? 결과는 독자들의 상상에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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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반딧불이 하면, 뭐니 뭐니 해도 ‘형설지공(螢雪之功)’이란 말이 떠오른다. 중국 진나라 차윤(車胤)이 반딧불을 모아 그 불빛으로 글을 읽고, 손강(孫康)이 겨울밤에 눈빛에 비추어 글을 읽었다는 고사에서 나왔다.
그러고 보니 천장에 매달린 형광등(螢光燈)의 불빛과 형설지공의 ‘형’도 반딧불 아닌가. 옛날 선비들이나 오늘을 사는 우리나 반딧불로 공부하는 셈이다. 이 좋은 가을날, 책 향기를 마음에 그득 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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