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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의 효험[이상곤의 실록한의학]〈101〉

입력 | 2020-11-09 03:00:00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조선의 장수 임금 영조는 고기도 싫어했고 비린내 나는 생선도 먹지 않았다. 입맛이 까탈스러운 임금이었다. 영양 보충을 위해 그가 찾은 대안은 엿이었다. 재위 13년 제조 조현명이 소화력이 떨어져 허약해진 영조에게 엿을 권유하자 “나도 아주 좋아한다”며 흔쾌히 받아들인다. 까칠하고 성깔이 있었던 영조는 대신들과 자주 정치적 견해가 엇갈렸다. 그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지고 막힌 듯할 때는 엿을 찾아 먹곤 했다. 한마디로 스트레스가 심해질 때 달콤한 엿으로 마음을 달랜 것이다. 특히 생강을 말린 건강(乾薑)을 넣어 만든 엿은 설사와 복통을 앓은 영조의 재위 24년 동안 또 다른 약식(藥食)으로 사랑을 듬뿍 받았다.

한의학은 엿의 효능을 이렇게 설명한다. “술과 엿은 누룩과 엿기름으로 만드는데 이 둘은 모두 보리로 만든다. 누룩은 먼저 보리를 가루로 만들어 뚜껑을 덮어 생기를 꺾어 가두었다 발효한다. 오랫동안 갇혀 있었으므로 성질이 더욱 미쳐 날뛴다. 반면 엿은 싹을 틔워 기가 풀려 나온 것을 가루로 만들므로 기가 순조로우며 이완되어 성질이 느리고 완만하다. 엿은 화(火)를 진정시켜 물을 만든다.”(본경소증)

수험생들에게 예부터 엿을 먹인 이유도 바로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시험 때문에 생긴 긴장과 스트레스를 풀어주기 위해서다. 긴장감을 풀기 위해 우황청심환을 복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엿은 스트레스로 인한 복통까지 해소한다. 실제 ‘고3병’을 앓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속이 답답하거나 꽉 막힌 것 같은 증상을 호소한다. 특히 시험 당일 배가 아파 어쩔 줄 몰라 하는 학생들도 있다. 지나친 긴장이 유발하는 복통 증상인데, 한의학은 이를 이급(裏急)이라 한다. ‘속이 급하게 고통을 호소한다’는 뜻이다.

서양의학에서도 긴장과 스트레스가 복통을 일으킨다는 데 동의한다. 긴장과 스트레스는 자율신경의 조화를 깨 위벽 세포의 모세혈관을 수축시킨다. 그로 인해 위 점액의 분비량이 줄면서 위장 내부의 산도가 높아진다. 넘쳐나는 위산을 중화시키지 못하는 것. 결국 환자는 배가 딱딱해지며 복통을 호소하고 밥맛을 잃는다.

한방에서 엿 성분이 가장 많이 든 처방은 소건중탕인데 적응증에 복통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빈혈이 있어 쉽게 피로하며 뱃가죽이 얇고 복직근이 땅긴다. 복통을 호소하며 손발이 화끈거리고 목이 건조하다.” 소건중탕은 어린이 체질개선제로 개발돼 대중적 인기를 끌었다.

뇌가 활동하는 데 있어서 포도당은 한순간도 없어서는 안 되는 주요 에너지원이다. 공복이 되면 사고력이 흐려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엿은 예부터 뇌에 당을 공급하는 중요 에너지원이었으며 마음의 급박함을 진정시키는 약이었다. 최근에는 엿 대신 초콜릿을 선물하는 새로운 풍속이 생겼지만 뇌 건강과 스트레스 해소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한다면 필자의 추천은 엿이다.

엿의 종류는 많다. 특히 유명한 것은 울릉도의 명물 호박엿과 개성과 광주의 밤엿이다. 호박엿은 본래 이름은 후박엿이다. 후박은 배가 아프고 불러 올라 그득하며 소리가 나는 답답한 증상을 치료하는 명약이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