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신이현 작가·프랑스인 남편 도미니크 에어케(레돔) 씨
그런데 올해는 그것도 쉽지 않다. 경쟁자들이 생겼는지 금세 사라져 버린다. 나무 밑에 보초를 서서 보니까 낙엽 보따리를 노리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당신도 빨리 움직여야지. 이러다 다 뺏기겠어! ‘빨리빨리’는 한국 사람을 못 당해. 포도나무 다 얼어 죽어도 난 몰라!” 나는 틈만 나면 레돔을 닦달한다. 어디선가 ‘위잉∼’ 하는 소리가 들려 쳐다보니까 아저씨 두 분이 기계로 낙엽을 날려서 모아 담고 있다. 후다닥 달려 나가니 꼬부랑 할머니 한 분이 끙끙거리며 유모차에 낙엽 자루를 올리고 있다. 질 수 없다! 나는 청소하는 아저씨의 리어카를 빌려 빛의 속도로 낙엽 자루를 마구 실어서 날아가듯이 다 가져와 버렸다. 겨우 한 자루 싣고 갔다 오니 하나도 남아 있지 않자 할머니는 “아니, 쓸어 담을 때 내가 다 가지려고 눈도장 찍어 놓은 건데…” 하신다.
“여기 이 깻단 주인이 누구예요? 우리가 가져가도 돼요?” 포도밭이 있는 수회리 동네 입구에 들깨를 털고 난 깻단이 있어 여쭤보니 다 가져가란다. 낙엽과 깻단 두 트럭을 밭에 부려 놓고 집에 오니 일이 태산이다. 청소는 물론 처리해야 할 서류도 한 가득이다. 그런데 자꾸 전화가 걸려온다. 수회리 어르신들이 자기 밭에도 깻단이 많으니 당장 가져가라는 것이다.
“아니, 가져가라고 할 때 가져가야지!” 그리 말씀하신다. 바빠 죽겠는데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몰라 무작정 달려가 본다.
그런데 트럭도 들어갈 수 없는 꼬불꼬불한 밭에 집채보다 큰 깻단이 쌓여 있다. “어머나, 이건 어떻게 가져가죠?” 내가 망연자실하니 아저씨가 이미 깻단 묶을 줄까지 곱게 준비해두셨다. “잘 보시게. 이렇게 줄을 놓고 그 위에 깻단을 가지런히 놓아. 그리고 깻단 위에 두 다리를 벌리고 앉아 팍팍 눌러야 해. 그래야 깻단이 슬슬 빠지지 않거든. 단으로 잘 묶어서 저쪽으로 굴려 가면 금방 끝나.” 나는 바닥에 줄을 놓은 다음 깻단을 쌓아 놓고 그 위에 앉아 엉덩이로 마구 짓누르며 두 발로 모아 묶는다. 다섯 개쯤 하니까 허벅지에 쥐가 나고 입에서 끙끙 소리가 흘러나온다. 저쪽에서 차분하게 무와 배추를 뽑던 아저씨가 와본다. “예전에는 다 태워 버렸는데 이제는 그것도 못하니까 사람 몸이 고생이지. 하다 보면 요령이 생길 거야.” 한마디 하신다.
먼 산에 새가 울고 해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금방 추워진다. 이마에 맺힌 땀이 서늘해지면서 오한이 나려고 한다. “이제 그만하고 가야지. 내일 또 하면 돼.” 배추 뽑던 아저씨가 밭을 떠나면서 무와 배추를 한 보따리 주신다. 우리는 트럭 가득 깻단을 싣고 포도밭에 부려 놓는다.
※ 프랑스인 남편 도미니크 에어케(레돔) 씨와 충북 충주에서 사과와 포도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습니다.
신이현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