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헌군주제 국가 태국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석 달 넘게 계속되고 있습니다. 7월부터 시위대는 세 손가락 경례를 하며 저항하고 있습니다. 세 손가락을 들어 경례하는 장면은 프랜시스 로런스 감독의 영화 ‘헝거 게임’에 나옵니다. 기존 질서에 저항하는 주인공을 지지하는 상징 행위입니다. 대규모 시위 과정에서 시위대와 경찰의 물리적 충돌로 인명 피해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태국에서의 반정부 시위는 올 2월 정부 비판적 성향의 야당 ‘퓨처포워드당(FFP)’이 강제 해산되면서 시작됐습니다. 게다가 마하 와치랄롱꼰 국왕의 방탕한 왕실 재정 지출 문제가 드러나면서 태국 청년들의 분노는 들끓었습니다. 10∼30대의 젊은 층을 주축으로 한 시위대는 쁘라윳 짠오차 총리(사진)의 퇴진과 왕실 개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정부 시위대는 군주제 개혁을 직접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군주제 개혁 10대 요구안을 내걸고 왕실모독죄와 왕실재산법 폐지, 표현의 자유를 외칩니다. 태국 국왕은 즉위 후 400억 달러로 추산되는 왕실 재산을 사유화했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국민들은 고통받고 있는데 왕실의 흥청망청은 도를 넘었다고 생각한 청년들이 저항의 목소리를 높인 겁니다.
이런 가운데 태국 국왕의 화해 제스처가 나와 눈길을 끕니다. 와치랄롱꼰 국왕은 이달 1일 해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들도 똑같이 사랑한다”면서 “태국은 타협의 땅”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발언 뒤 태국 법원은 군주제 개혁 요구를 가장 먼저 주장한 인권변호사 아논 남빠를 석방했습니다.
쁘라윳 총리는 여전히 사퇴 불가 입장이지만, 야당과 시민사회의 참여를 포함한 화해위원회 구성을 놓고 협상이 오가고 있습니다. 국민들의 정치 개혁 요구를 군부와 왕실이 어떻게 수렴하느냐에 따라 태국의 미래가 결정됩니다. 유혈 사태 없이 돌파구가 마련되기를 기대합니다.
박인호 용인한국외대부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