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 10일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를 만나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에 이은 새로운 한일 정상 간 공동선언을 제안했다고 한다. 이에 대한 스가 총리의 구체적 반응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본 교도통신은 스가 총리가 “관계 회복의 계기를 한국 측이 만들라”고 요구했다는 점을 들어 난색을 보인 것이라고 전했다.
작금의 한일관계는 공식 외교라인도 비공식 국회라인도 아닌, 정보라인이 메신저로 나서는 기형적 외교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소리 소문 없이 움직여야 할 국정원장이 드러내놓고 대통령의 메시지를 들고 가는 것을 정상적 외교로 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한일 간 접촉과 대화가 오간 것을 그나마 다행이라 여겨야 하는 게 한일관계의 현주소다.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이후 한일 양국은 극한 대립과 교착의 2년을 보내고도 여전히 서로에게 공을 떠넘기며 한 치의 진전도 보지 못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이 종료 직전까지 가는 한일관계 악화에도 불구하고 개입하지 않았다. 오직 자신을 중심으로 한 원맨쇼 외교에 한일 갈등은 그저 끼어들 필요가 없는 성가신 일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바이든 시대는 전혀 다를 것이다.
바이든 시대는 중국 견제를 위한 동맹의 강화, 한미일 3각 공조체제의 공고화를 예고하고 있다. 바이든 당선인은 부통령 시절인 2013년 아베 신조 당시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때는 일본에 단호한 태도를 보였지만 2015년 위안부합의 때는 중재자로 나서는 등 갈등 해소를 위한 그 나름의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한일관계에서 그 시작이자 갈등의 근원인 한일협정부터 위안부합의까지 미국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이든 시대는 그런 전통적 동북아 외교의 복원, 나아가 강화를 의미한다. 지속되는 한일 갈등에 미국이 마냥 손놓고 있지 않을 것이다. 단순 중재를 넘어 한쪽의 손을 비트는 것이 될 수도 있다. 그 전에 한일이 적극 해법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