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 국방부에서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이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공개한 ‘1번’이란 글씨가 적혀 있는 북한 어뢰 추진체 잔해. 동아일보DB
주성하 기자
북한에서 어뢰를 오랫동안 다뤄봤던 전문가가 최근 탈북해 국내에 들어왔다. 그를 만나 전해 들은 답변은 너무나 간단하면서도 이해가 잘돼 ‘10년 동안 우리가 이런 단순한 걸 몰랐단 말인가’ 싶어 허탈할 지경이었다. 그의 말을 그대로 옮긴다.
“잠수함 함장이라 가정해 보세요. 어뢰를 쏴야 하는데, 몇 발을 쏴야 할지 모를 때 어느 어뢰부터 쏘겠습니까?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어뢰부터 발사하지 않겠습니까. 북한 잠수함은 탑재된 어뢰의 생산연도, 부품 및 정비 상태 등을 다 따져 어뢰 발사 순서를 미리 정해놓고 있습니다. 가령 북한 최대 잠수함(로미오급)은 수상 수량 1700t, 수중 수량 1919.36t인데, 앞에 6발, 뒤에 6발, 예비 2발, 모두 14발의 어뢰가 있습니다. 여기에 발사 순서 1번부터 14번까지 정해놓고 있는 겁니다.
북한 잠수함 전대는 어뢰관리조종대대를 갖고 있습니다. 어뢰는 방향, 침로, 심도 등을 조정하는 숫자 조정기를 먼저 떼어내고, 나머지를 분해해 알코올과 베-70이라는 휘발유로 닦고, 다시 윤활유를 새로 발라 조립합니다.
그런데 정비 철에는 여러 잠수함에서 내린 어뢰 수십 발이 병기창에 한꺼번에 들어옵니다. 그럼 정비할 때 부품들이 섞일 가능성이 높겠죠. 그래서 해당 잠수함의 1번 어뢰는 부품에도 1번이라 쓰고, 3번이면 3번이라 쓰는 겁니다. 그래야 그 어뢰는 정비한 뒤에도 신뢰할 수 있는 1번 어뢰로 남게 됩니다.”
설명을 들으니 쉽게 이해됐다. 북한은 천안함 공격 때 매뉴얼대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1번 어뢰를 싣고 온 것이다. 또 천안함 피격 7년 전 한국 해역에서 발견된 북한이 유실한 훈련용 경어뢰에 왜 ‘4호’라고 적혀 있는지도 알 수 있었다. 참고로 한국 해군은 어뢰를 정비할 때 매직으로 1번, 2번이라는 식으로 쓰지 않는다고 한다. 물론 중국이나 러시아가 1번이라고 한글로 적을 일도 없다.
북한이 발사한 어뢰는 어떤 종류일까.
중어뢰는 길이 7.738m, 지름 533.4mm, 어뢰 무게 2t, 속도가 51노트입니다. 장약량은 TNT 200kg입니다. 어뢰 발사관 지름은 어뢰 지름보다 딱 2mm 큰 535.4mm입니다. 전투 사거리는 4km이지만, 그러면 명중률이 너무 떨어져 2km 안에 접근해 발사하라고 가르칩니다. 이걸 어뢰 돌격거리라고 합니다.”
북한 어뢰 장약량(폭약을 장착한 양)이 TNT 200kg이라는 것도 중요한 증언이다. 천안함 피격 당시 백령도 지진관측소에는 TNT 약 180kg 규모의 폭발이 감지됐는데, 이를 근거로 ‘북한 어뢰의 장약량이 250∼300kg이니 이는 어뢰 폭발로 볼 수 없다’는 주장들이 나왔기 때문이다.
천안함 피격 브리핑 때 국방부는 “북한이 자체 생산한 ‘CHT-02D’ 어뢰를 발사한 것으로 보인다”며 제원을 공개했다. 이를 보면 북한제 어뢰는 수입 중어뢰보다 길이는 0.388m 줄어든 7.3m, 전체 중량은 300kg 줄어든 1.7t인데, 탄두 중량은 오히려 50kg이나 더 늘어난 250kg이고, 사거리는 무려 15km나 된다.
그는 이에 대해 “천안함 폭침 때 현직에 있지는 않았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는 국산 어뢰가 없었다”며 “길이, 무게가 줄었는데, 탄두 중량과 사거리가 훨씬 더 늘어난 어뢰를 북한이 갑자기 생산했다는 것을 믿기 어렵다”고 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