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스타브 쿠르베, 절망하는 남자, 1843∼1845년.
쿠르베는 프랑스 오르낭의 부유한 집안 출신이었지만 스스로를 사회의 반항아로 여겼다. 스무 살 때 법학을 공부하기 위해 파리로 왔지만 국가에 구속되는 삶이 싫어 자유로운 예술가의 길을 택했다. 사회 문제에도 관심이 컸던 그는 농민이나 도시 하층민의 비참한 현실을 묘사한 작품으로 사실주의 미술의 선구자가 되었고, 훗날 파리코뮌에도 적극 가담했다.
이 그림은 24세 때 그린 것으로, 당시 무명이었던 쿠르베는 명성과 먹을 것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었다. 그림 속 화가는 헐렁한 흰 셔츠에 짙푸른 작업복을 걸친 채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두 손으로 넘기고 있다. 놀란 듯, 분노한 듯 얼굴은 붉게 상기됐고, 두 눈은 관객을 향해 부릅뜨고 있다. 마치 “세상이 왜 이래?”라고 항변하는 듯하다. 국가 공식 전람회인 살롱전의 문턱은 그에게 너무도 높았다. 실패와 좌절을 거듭하면서 보수적인 예술계 자체에 환멸을 느꼈지만, 그림을 포기할 순 없었다.
예술가로 승승장구한 뒤에도 위기와 좌절은 계속됐다. 아마도 그때마다 쿠르베는 절망했던 젊은 시절을 떠올리며 견뎌냈던 듯하다. 파리코뮌의 실패로 스위스 망명길에 오를 때도 이 자화상은 챙겼고, 죽을 때까지 가지고 있었다. 절망의 순간을 견딘 뒤 찾아왔던 희망의 기억. 그에겐 롤러코스터 같은 삶을 살아낸 힘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