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물류법 제정 놓고 찬반 대립
○ 정부 여당 “고속성장 택배 시장 관리법 필요”
생활물류법은 지난달 8일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여당 의원 13명이 대표 발의해 국회에 계류돼 있다. 택배 종사자의 과로 방지를 위한 안전 대책을 마련하고, 택배업을 정부가 적극 관리하자는 게 취지다. 물류 인프라 확충, 차량 등록제 전환, 표준계약서 도입, 종사자 쉼터 설치 등이 주 내용이다. 20대 국회에서도 법안 상정이 추진됐지만 야당과 업계 반발로 무산됐다. 하지만 최근 택배 기사의 사망이 잇따르고 택배 물동량이 급증하면서 법안이 탄력을 받고 있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연내 처리 의사까지 밝혔다.
택배업은 일반화물운송업과 함께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화물법)에서 규제받는다. 배송 의뢰를 받은 화주가 택배 기사와 직접 계약하던 사업 형태에서, 점차 대리점을 통한 운영 체제로 바뀌며 부작용이 속출하자 새 규제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박 의원실 관계자는 “화물차를 소유한 기사들이 운송사와 계약을 맺고 일감을 따는 일반화물운송업과 대리점 체제로 운영되는 택배업은 구조와 체질이 달라 하나의 법으로 관리하기 어렵다”고 했다.
○ 화물단체 “과당 경쟁 유발” 반대… 노조 찬반 갈려
화물·용달차 등 일반화물 운송업 종사자들은 법안 내용 중 근로 환경 개선에는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생존권 침해를 호소하며 입법에 반대하고 있다. 물류 현장에서 일반화물과 택배화물은 구분하기 어려운데 이를 두 개의 법으로 규제하는 건 시장 질서를 크게 훼손한다는 입장이다. 또 택배업을 등록제로 전환해 증차를 방치하고 자가용, 승합차 등 사실상 이용 가능한 운송수단의 공급을 허용하면 과당 경쟁이 불가피하다는 게 반대 이유다. 국내 화물 3대 단체인 전국화물연합회 전국개별화물연합회 전국용달화물연합회는 최근 입장문을 내고 “46만 종사자의 생존을 위해 생활물류법을 저지하는 연대 투쟁을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
화물업계에 따르면 택배 허가를 받은 ‘배’ 번호판(1.5t 미만) 차량 중 다수가 가정용 소화물뿐 아니라 화주의 요청으로 냉장고, 가전제품 등 일반화물을 버젓이 실어 나르고 있지만 단속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최진하 화물연합회 부장은 “화물 포장의 규격화로 특수화물을 제외하고는 일반화물과 생활화물을 구분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인데 택배 차량을 늘리면 출혈 경쟁만 가속시킨다”고 주장했다.
업계는 화물법과 생활물류법이 공존하면 이중 규제로 운송 시장에 혼란만 부추긴다고 보고 있다. 최 부장은 “제정안을 뜯어보면 앞으로 소화물배송대행 인증만 받아도 화물법상 운송사업 및 주선사업 허가 없이 운수사업이 가능해질 것으로 우려된다. 불법인 자가용 화물차를 사용해도 새 법의 특별법적 지위로 화물법이 적용되지 않아 화물운송업 전체가 붕괴된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박 의원실 측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 때문에 우려하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며 향후 관련 업계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시행령 등 하위 규정의 제정 과정에서 업계 간 피해가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고 밝혔다.
민노총 소속 택배노조 내에서도 입장이 갈린다. 서비스연맹의 택배연대노조는 입법에 찬성하는 입장이지만 공공운수노조는 택배 사업주를 위한 법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공공운수 화물연대 택배지부 관계자는 “운송 시장의 혼란을 초래할 우려가 큰 데다 근로환경 개선의 핵심 쟁점인 ‘분류 종사자’ 규정 자체를 삭제하고 분류 업무의 책임 소재를 담겠다는 표준계약서도 권고 수준이어서 용납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생활물류법 원안에선 택배서비스사업종사자를 화물의 집화·배송 업무를 하는 ‘택배운전종사자’(택배 기사)와 화물의 분류 업무만 하는 ‘택배분류종사자’(분류 인력)로 명확히 구분했다. 하지만 업체 간 업무 환경의 편차가 커 일괄적으로 책임 소재를 가리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이 내용이 삭제됐다.
강성명 기자 sm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