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그제 “피의자가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악의적으로 숨기거나 수사를 방해하는 경우 법원의 명령 등 일정 요건하에 그 이행을 강제하고 불이행 시 제재하는 법률 제정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비밀번호 해제를 법으로 강제하겠다는 발상인 것이다.
추 장관의 지시는 법치를 책임진 주무 장관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인지 귀를 의심케 할 정도다. 아무리 범죄 혐의를 받는 피의자라 하더라도 방어권을 행사하는 것은 헌법에 명시된 국민 기본권이다. 헌법 12조 2항은 ‘모든 국민은 고문을 받지 아니하며,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수사기관에 출석해 묵비권을 행사하고 증거를 인멸하더라도 자신과 관련된 행위는 처벌받지 않는 것도 이런 헌법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다. 개인의 비밀정보가 가득 들어 있는 휴대전화의 비밀번호를 내놓으라고 강요하는 것은 헌법정신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초법적 행위가 될 수 있다.
휴대전화 비밀번호는 개인들이 사생활 보호를 위해 머릿속에 기억하는 것인데 이를 강제로 말하라는 것은 사생활을 뒤지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휴대전화 속에 들어 있는 증거를 확보하는 일은 수사기관의 몫이지 당사자가 협조해야 할 의무는 없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추 장관이 외국 입법례로 거론한 영국의 ‘수사권한 규제법’은 테러 방지 등 국가안보에 한정된 것이어서 일반 형사사건을 염두에 둔 듯한 추 장관의 발상과는 제정 목적이 근본적으로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