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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판 실리콘밸리 마곡지구, 땅 기운과 찰떡 궁합 [안영배의 도시와 풍수]

입력 | 2020-11-15 09:00:00


‘코오롱 one&only타워’(사진 왼쪽)와 ‘LG사이언스파크’(사진 뒤쪽) 사이 지점이 마곡산업단지의 중심점이자 강한 지기가 형성돼 있는 곳이다. 안영배 논설위원

네모 반듯하게 조성된 도로 양쪽으로 고급 고층 건물과 아파트 단지가 즐비하게 늘어선 서울 강서구 마곡지구(마곡동, 가양동 일대). 이 달 중순 찬바람이 몸에 스며드는 무렵 이곳을 찾았더니 옛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10년 전만 해도 이곳은 서울 변두리에 있던 평범한 논밭 지대에 지나지 않았다. 서울시가 2005년 ‘서울의 경쟁력 회복, 세계도시로의 도약’이라는 비전을 걸고 이 일대 366만6644㎡(약 100만 평)의 땅을 도시개발지구로 지정한 이후 그야말로 ‘강산이 변한’ 것이다.

미니 신도시급에 해당하는 마곡지구는 단순히 생활 거주지를 제공하는 택지지구로만 계획된 게 아니다. 지구내 조성된 마곡산업단지는 한국의 미래 먹거리를 책임질 첨단 연구개발(R&D) 단지가 들어서 있다. LG, 롯데, 이랜드, S-Oil, 넥센, 코오롱, 대웅제약 등 민간 기업들이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2022년까지 모두 150여 개 기업이 입주할 예정이다.

마곡지구에 조성된 서울식물원 건물(사진 왼쪽). 서울식물원 내 습지원(사진 오른쪽).

마곡 호수공원 조감도. 주위로 공연장과 상업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다.

이와 함께 마곡지구는 서울식물원, 공원, 전시 및 문화 공연 시설 조성 등 자연과 문화가 접목된 그린시티를 꿈꾸고 있다. 특히 마곡지구의 랜드마크로 꼽히는 서울식물원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선을 보이는 보타닉공원(공원과 식물원의 결합)으로 2019년 5월에 개장했다. 축구장 70개 규모(50만4000㎡)에 이르는 이곳은 열린숲, 호수원, 습지원, 주제원 등 4개 구역으로 구성돼 사람들이 즐겨찾는 명소로 부상했다. 서울시는 애초에 마곡단지를 개발하면서 미국의 실리콘밸리를 염두에 두고, 서울판 실리콘밸리인 ‘마곡밸리’를 구상했다고 한다.

평지돌출 형 명당 마곡산업단지

양천향교. 안영배 논설위원

경제의 젖줄인 기업들이 들어서면 당연히 인구 유입과 주거지, 상업지구의 발달을 불러오게 마련이다. 이는 도시가 발달 혹은 진화한다는 뜻이고, 땅으로 풀이하자면 지운(地運;땅의 운세)이 발동된다는 의미다.

역사적으로 마곡지구는 사람의 손을 거의 타지 않았던 곳이다. 산업단지가 들어선 마곡동(麻谷洞)은 한자 이름 그대로 삼을 많이 심은 골짜기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일 정도다. 이 일대에서 그나마 사람이 모여 소도시(양천현)를 이룬 곳은 마곡지구 중심부에서 다소 떨어진 궁산(74.6m) 아랫자락의 평지였다. 이곳에는 지금도 조선시대 양천현 현령이 머물던 관아 터, 지방 공립학교인 향교, 공무를 수행하는 관리들이 묵던 객사 등의 자취가 남아 있다.

옛 양천현(마곡지역) 뒷산인 궁산(사진 가운데). 산 정상에는 백제시기에 건축된 군사용 토성이 있다. 안영배 논설위원.

궁산자락에 도시가 들어선 것도 군사적 이유가 컸다. 동쪽에서 흘러오는 한강과 남쪽에서 올라온 안양천이 합류되는 지점에서 솟아난 궁산은 한강 건너편으로 마주 보이는 덕양산의 행주산성과 더불어 한강 하구를 경계하는 중요 전략지역이었다. 이 산 정상부에는 삼국시대에 조성한 산성(양천고성지)의 흔적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임진왜란 때는 행주대첩의 주인공인 권율 장군이 수원에서 행주산성으로 들어가기 전 이곳에 머무르며 왜군을 물리칠 작전을 짰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그러던 땅이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최첨단 스마트 도시로 변신하고 있다. 풍수의 지기쇠왕설(地氣衰旺說)에 따라 사람의 손길과 발길이 닿으면서 지기가 왕(旺)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마곡지구는 지형과 지세를 살펴 명당 여부를 판별하는 전통풍수적 시각에서 볼 때는 그다지 높은 점수를 주기가 어렵다.

궁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한강. 궁산은 한강을 지키는 전략 요새지로 활용돼 왔다. 안영배 논설위원

무엇보다도 땅의 배경, 즉 뒷심이 되어주는 주산(主山)이 마땅찮다. 조선시대 양천현의 주산으로 인정된 궁산은 나지막한 야산에 불과하고, 마곡지구 남쪽의 수명산 역시 해발 72m에 불과해 마곡지구의 수호산 역할을 하기가 어렵다. 동쪽의 검덕산이나 서쪽의 개화산도 위치상 주산으로 인정되기 힘들다. 그러니 마곡지구는 어느 산에 기대지 못한 채, 평지에서 자체적으로 돌출한 명당을 이룬 모양새다.

그런데 마곡산업단지를 동서남북으로 둘러싸고 있는 네 개 산을 동서축(검덕산-개화산)과 남북축(수명산-궁산)으로 선을 그어보면 교차해 만나는 지점이 있다. 바로 LG 계열 연구소들이 입주한 ‘LG사이언스파크’와 ‘코오롱 one&only타워’가 들어선 곳이다. 이 지점은 위치상 4개 산의 중심점인데, 이곳을 중심으로 지기가 자기장처럼 넓게 펼쳐져 있다. 바로 이 기운이 마곡산업단지의 미래를 이끌어갈 주 에너지원이 될 것이라고 본다.

연구와 예술에 좋은 터
마곡산업단지의 지기는 어떤 속성이 강할까. 풍수에서는 기를 크게 5가지로 분류한다. 산을 그 생김새에 따라 목형산·화형산·토형산·금형산·수형산 등 오행(五行) 산으로 분류하거나 땅의 기운을 오행으로 구분하는 방식이다. 이런 분류법에 따르면 마곡산업단지의 땅 기운은 ‘목기(木氣)’와 ‘화기(火氣)’가 강한 터라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목기는 교육, 연구, 성장 등에 유리한 기운이고, 화기는 예술, 문화, 창조 활동에 도움이 되는 기운으로 해석한다.

따라서 마곡산업단지는 기업체 연구소가 들어서면 큰 연구 업적을 낼 수 있고, 창의성을 펼치는 공간으로서도 딱 들어맞는 터라고 할 수 있다.

마곡산업단지에 조성된 ‘LG사이언스파크’ 전경. 국내 최대 규모(연면적 111만 ㎡·여의도 면적의 3분의 1)의 연구개발단지로, LG전자 LG화학 등 LG그룹 8개 계열사의 연구개발(R&D) 인력이 근무하고 있다. LG그룹 제공

현재 이 터에서 가장 큰 혜택을 받고 있는 기업은 LG그룹이다. LG는 2018년 17만여㎡의 부지에 LG전자 등 8개 그룹 계열사의 연구기능을 모은 ‘LG사이언스파크’ 문을 열었다. LG 주력기업의 연구단지들이 대부분에 여기에 집합돼 시너지 효과도 기대된다.

‘코오롱 one&only타워’ 앞에서 코로 서 있는 코끼리 동상. ‘코~오~롱’이라는 단어가 연상되는 코끼리 상은 창의성을 상징하는 듯하다. 안영배 논설위원

다음으로 롯데그룹과 코오롱그룹을 꼽을 수 있다. 롯데그룹은 2017년 영등포구 양평동에 있던 중앙연구소를 이곳으로 이전하면서 규모를 5배 키운 ‘롯데 R&D센터’를 개설했다. 코오롱그룹의 연구개발센터인 ‘코오롱원앤온리(One&Only)타워’도 이곳에 들어섰는데, 건물 유리 외벽에 섬유 직조패턴을 형상화한 패널을 전면에 두른 독특한 형태로 주위의 시선을 끌고 있다.

마곡단지에 아쉬운 점은 있다. 주변 산이 낮다보니 한강 변의 바람을 막아주는 장치가 없다. 뒷 배경이 부족하다보니 등받이 없는 의자처럼 안정감을 기대하기 힘들고, 특히 겨울에는 찬바람을 막아주지 못해 황량함을 느낄 수 있다. 또 마곡지구 인근의 김포국제공항은 비행기의 잦은 이착륙으로 인해 주변에 불편감을 줄 수 있다. 이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거리 곳곳에 나무 숲 같은 방풍림을 조성하는 게 필요하다.

그러나 마곡지구는 이런 약점을 충분히 보완하고도 남을 만큼 미래적 가치가 크다. 육해공의 교통길이 뚫려 있는 이곳은 기업의 성장에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상전벽해가 된 마곡 땅은 지운의 변화를 관찰할 수 있는 모범적 사례라는 점에서 마곡의 미래를 기대해본다.

안영배 논설위원ojong@donga.com